'통증 케어' 60년 외길...국민파스 남기고 영면에 들다
- 김진구
- 2022-07-08 06: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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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영수 신신제약 명예회장의 삶과 철학
- 냉·온찜질 동시 파스도 첫 개발...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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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명예회장은 1959년 신신제약 설립 후 2020년 대표직을 내려놓을 때까지 약 60년간 '파스 외길'을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의 통증을 케어한다'는 그의 창업정신은 지금까지 신신제약의 핵심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배고픔보다 근육통 심하던 시절…대한민국 1호 파스 개발
1927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 흥국초등학교, 경성상업학교를 거쳐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지금의 경영대학에 해당하는 다롄고등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제약·화학 회사를 다니던 청년 이영수는 국민이 배고픔보다 근육통으로 고통 받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당시 대한민국은 6·25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국민 대부분이 육체 노동으로 인한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렸다. 밀수품으로 나돌던 일본산 파스는 너무 비쌌다. 무작정 통증을 참아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이 명예회장은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일념 하에 1959년 신신제약을 창립했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다. 동시에 '대한민국 1호 파스'를 선보였다. 오늘의 신신제약을 있게 한 '신신파스'였다.

우리 기술로 만든 파스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부족한 제조 기술 탓에 반품이 거듭됐다. 시장에선 밀수품인 일본 파스에 밀려 사업 초기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영수 명예회장이 직접 나섰다. 당시 기술적으로 앞서 있던 일본의 유명 파스 업체인 니찌반에 기술 제휴를 요청했다. 수차례 거절을 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갔다. 그는 '나 이영수가 아닌 대한민국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결국 신신파스 발매 10년 만인 1969년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니찌반으로부터 기술이전을 통해 '무용제 저온 연합법'을 도입했다. 기존 파스는 제조 과정에서 열에 의해 약효 성분이 쉽게 손실됐으나, 니찌반의 신기술을 통해 약효 성분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파스 원료 '면사' 동 나자…임직원 한 마음 고군분투
제품의 품질을 높여 놓고 나니, 이번엔 원료가 말썽을 부렸다. 파스와 반창고의 주원료인 면사(綿絲)가 수급난에 빠진 것이다. 당시 면사는 우리나라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는데, 중국에서 대량 매점에 나서면서 면사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이영수 명예회장과 임직원들이 한마음으로 고군분투했다. 임직원들은 입고 있던 단벌 와이셔츠를 벗어 제품을 만들었다. 이영수 명예회장은 당시 최대 직물업체인 경성방직을 직접 찾아가 연을 맺었다. 결국 방직협회로부터 최우선 실수요자로 선정되면서 두 번째 위기도 극복했다.
이후로 신신제약은 본격적인 상승세를 탔다. 1971년 파스, 반창고, 에어로졸 살충제 등을 이란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의약품 생산액 1억원을 넘어섰다. 그해 말 국회의장이 수여하는 우수기업상을 수상했다. 이듬해엔 태국과 필리핀으로 수출 국가를 확대했다.
◆일본에 기술제휴 호소한 지 10년 만에 제품 역수출
1973년은 신신파스의 향상된 품질이 검증 받은 상징적인 해다. 신신제약은 정부로부터 일본 수출 독점권을 부여받았고, 신신파스와 반창고를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부족한 기술력을 채우기 위해 일본기업의 문을 두드린 지 10여년 만에 반대로 제품을 수출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1970년대 전 세계를 강타한 석유파동에도 신신제약은 성장을 거듭했다. 1975년엔 생산실적이 전년 대비 50% 늘었다. 1976년엔 여기서 82% 더 성장하면서 연간 생산실적 10억원 고지에 올라섰다. 1970년대 말에는 신신파스의 수출국가가 12개국으로 늘었다.

1990년대에도 이영수 명예회장의 '한 우물 파기' 전략은 계속됐다. 이 시기 많은 제약기업이 화장품·식품에 도전했지만, 신신제약은 기존 제품의 품질 개선과 노후화된 공장시설 정비 등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과 그간의 제약산업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이영수 명예회장은 1997년 제25회 보건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IMF 위기에도 구조조정 대신 본사 이전으로 극복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성장을 거듭하던 신신제약도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수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실업자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영수 명예회장은 달랐다. 면사 원료 위기 때 와이셔츠를 함께 벗었던 직원들을 떠올렸다. 직원을 자르는 대신 안산공장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갔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각오였다.

◆'파스 외길' 고집…'국민파스' 남기고 영면에 들다
이후로도 꾸준한 연구 개발로 파스 제조 노하우를 축적했다. 신신제약은 2007년 이 기술을 집약한 제품을 선보였다.
국내 최초로 냉찜질과 온찜질을 한 번에 할 수 있는 '신신파스 아렉스'를 발매했다. 처음에는 냉찜질로 붓기를 빼주고, 차츰 온찜질로 전환돼 혈액 순환을 돕고 통증을 완화하는 제품이다. 기존의 유기용매 대신 천연고무 연합 방식으로 제조해 친환경적이면서도 피부 안전성과 밀착성, 신축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로지 통증으로 고통 받는 국민을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파스 외길'을 파온 이영수 명예회장은 국민파스를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항암제도 거창하게 주목 받는 신약도 아니지만, 이영수 명예회장의 인생이 담긴 신신파스는 국민의 고통을 가장 가까이서 보듬는 제품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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