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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칼럼] 의료 발전과 천의 얼굴 '급성 맹장염'

  • 데일리팜
  • 2019-04-08 15:45:09
  • 김대철 부교수(동아대 의대 병리학교실)

웹 서핑을 하다보면 '흔한 맹장수술(충수염 수술), 복강경으로 간편하게' 같은 제목을 붙인 의학 컬럼을 종종 맞닥뜨린다. 심지어 '복통으로 맹장염 수술한 썰' 등 배가 아파 충수염 수술을 받은 상황을 가볍고 코믹하게 풀어 낸 동영상이나 SNS콘텐츠가 꽤 높은 조회수를 보이기도 한다. 반면 '맹장염 수술 받던 환자 사망'이란 뉴스가 사회면에 오르거나 저녁 프라임 뉴스타임에 방영된 사례도 있다. 급성 충수염은 수 십년 전 만해도 사망률이 25%에 달하는 무서운 질환이었다. 2015년 한 해 전세계 급성 충수염 진단 환자 통계를 보면 전체 진단 건수는 1160만명이었고 이중 사망 환자가 5만100명 정도다. 여전히 급성 충수염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비록 오래전 데이터지만 2012년 한 해 우리나라 급성 충수염 사망률은 백만명당 1명으로 미국, 유럽, 호주 등과 같다.

이젠 의료의 발전으로 초음파 검사나 컴퓨터 단층 촬영 도움을 받아 충수염을 비교적 정확하게 수술 전에 진단할 수 있게 됐다. 응급 수술과 적절한 항생제 치료 덕에 사망율이 1%이하로 떨어졌다. 이와 유사한 모성 사망의 예를 보자. 모성 사망은 산모가 임신 또는 임신 관리로 인해 임신 중이나 분만 중 숨지는 것을 말한다. 한 국가의 보건의료체계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다. 모성사망률(모성사망자 수/ 15세~49세 가임기 여성수*100,000)의 추이를 보면 2009년에 0.45 에서 2017년에는 0.20으로, 모성사망비는(모성사망자 수/출생아수*100,000)는 2009년에 13.5에서 2017년에는 7.8로 감소했다. 더 부연하면 분만으로 산모가 사망하는 예가 많이 감소해서 2017년에는 출생아 10만명당 7.8명의 산모가 사망 했다는 뜻이다. 이는 2000년 15.8명에 비하면 절반으로 준 수치다.

이 덕택에 주변에서 분만 중 엄마를 잃은 사례를 찾기 힘들어 졌다. 하지만 외국의 몇몇 나라에서는 모성사망비가 수백에서 수천을 넘나드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보건의료빅데이터 개방시스템을 조회하면 2017년 병·의원에서 급성충수염으로 보험공단에 급여청구한 건수가 약 10만건에 이른다. 2017년 약 10만명의 급성충수염 환자가 발생 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급성 충수염으로 진단·수술 받은 환자가 특별한 부작용 없이 퇴원을 해서 정상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출생아 수는 약 35만명으로, 약 35만건의 분만이 이루어 졌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사망위험이 높은 수술이 여전히 많은데도 사망률이 차츰 낮아진 이유는 뭘까? 의료접근성과 의료·진료 환경 개선을 통해서 과거보다 더 안전히 진료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수술 건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이 굉장히 낮아졌다면 이제는 쉬운 진단 또는 쉬운 수술, 한발 더 나아가 안전한 수술일까?

한국의료분쟁조정위원회 상담 내용 중에 충수염의 진단 지연과 관련한 사례가 있다. 내용을 보면 "여자 아이가 복통으로 응급실에 내원해 X-ray 검사에서 특이소견 없음으로 진단받고 수액 투여 후 귀가 조치 됐다. 다음 날까지 통증이 지속돼 또다시 응급실 내원 후 복부 CT 검사 결과 급성충수돌기염으로 진단, 복강경적 충수돌기절제술을 받았다. 처음 응급실 내원 당시 충수돌기염을 정확히 진단하지 못해 환자 통증을 지속시킨 병원에 신체적·정신적 보상 책임을 묻고 싶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진료 병원의 과실을 인정한 판례로 소개됐다.

이 판례에 상당수 외과 의사나 소아과 의사들은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소아의 경우에는 증상이 모호하며 혈액검사 등의 수치가 어른과 차이가 나고 영상 검사에서도 명확하지 않게 나온다면 도리어 수술 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나 오진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급성복통을 유발하는 질환은 급성충수염 외에도 엄청나게 많다. 진료 중 그런 질환들을 구별해 내서 다양하게 검사하고 판단하는 것을 감별진단이라고 부른다. 응급 상황에서는 이런 감별진단을 신속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감별진단은 환자의 나이, 성별, 증상과 검사 결과를 토대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순서대로 확인해 나간다.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이런 감별진단을 수십에서 수백번씩 반복적으로 매일한다.

어떤 질환은 응급 수술이 필요하지만 어떤 질환은 수액과 항생제만으로도 치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잘못 판단해서 수액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수술했다면 환자의 몸과 마음에 큰 반흔을 남기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급성 충수염은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말은 외과의사들 사이 자주 회자된다. 증상 형태가 너무 다양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폭 넓은 술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과의가 처음 수술을 배울 때는 아주 전형적이고 수술 범위가 간단한 급성충수염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외과의들은 처음에는 충수염 수술을 쉽게 여기지만, 점차 사례를 경험할수록 혼자 해결 할 수 없는 아주 어려운 경우까지 겪게 된다.

그래서 급성충수염은 외과의가 가장 많이 접하는 질환이면서도 '질환 다양성'과 '쉬운 질환'이란 대중 인식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부담스러운 질환이다. 급성충수염의 전형적인 증상은 전체 환자의 50%정도에서 발현된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증상과 검사결과들 심지어 영상검사조차도 진료의사에게 100%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임상 상황에서는 100%란 존재할 수 없고, 하물며 환자도 100%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진단명은 있어도 같은 환자는 없다는 것을 시간이 가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사망에 이른다. 질환은 사망 시점을 다르게 만든다. 의사는 이 사망 시점을 어떻게든 늦춰 보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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