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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약대 6년제 17년, 졸업생은 여전히 약국으로[데일리팜=김지은 기자] 대한약사회가 공개한 2025년도 회원 통계자료를 보다 보면 흥미로운 대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약사 숫자는 여전히 늘고 있는데, 정작 약사들이 향하는 방향은 오히려 더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설약사는 2만2778명으로 전년도보다 증가했다. 근무약사 역시 6348명으로 소폭 늘었다. 반면 병원·의원·보건소 등 의료기관 종사 약사는 6209명에서 6173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이 흐름을 들여다보면 지금 약사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구조적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주목된다. 약학대학 6년제 도입 당시만 해도 기대는 컸다. 기존의 조제 중심 약사 역할을 넘어 병원약사, 산업약사, 연구약사, 공직약사 등 다양한 전문 직역으로 약사의 진출 영역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단순 약사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닌 약사 직능 다변화 역시 약대 6년제 전환 취지에 포함됐다. 실제 정부 역시 약대 정원 확대와 학제 개편의 명분으로 전문성 강화와 다양한 진로 확대를 강조해 왔다.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과 맞물려 산업약사 수요 증가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약대 6년제 도입 17년, 첫 6년제 졸업생 배출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통계상 가장 뚜렷하게 증가하는 영역은 결국 지역 약국이다. 개설약사와 근무약사를 합치면 전체 회원의 73.0%인 2만9126명에 달한다. 사실상 약사 10명 중 7명 이상이 지역 약국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약대 6년제 도입 당시 기대했던 다양한 전문 직역 진출은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의약품 제조 분야 종사 약사는 1416명으로 전체의 3.5%에 그쳤고, 의약품 도매는 1041명(2.6%), 의약품 수출입은 113명(0.3%), 정부·공공기관은 80명(0.2%), 의약품 산업 외 기업체 종사 약사는 43명(0.1%)에 불과했다. 학교 종사 약사 역시 36명(0.1%) 수준이었다. 결국 산업계와 공공 분야까지 상당수 직역이 여전히 ‘0%대 비중’에 머물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은 결국 지역 약국의 경쟁 심화와 더불어 양극화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마트형, 창고형약국 등 대형 약국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출혈 경쟁은 더 심화되는 양상이다. 최근 만난 한 약학 교육자의 말은 이런 현실을 더욱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약대 6년제를 평가하며 “진로 다양성의 축소는 아쉬운 대목”이라며 “6년제가 본래 지향했던 지역약사·병원약사·산업약사·연구자의 균형 잡힌 양성 구조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면서 졸업생 진로가 다시 특정 영역(지역 약국)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산업계는 물론이고 행정 분야에서 약사 인력난을 호소한 지 오래다. 연구개발(R&D), 임상, 제조관리자, 품질관리(QC) 분야를 중심으로 약사 수요는 꾸준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원자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상급종합병원은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고 지방 병원은 인력 확보 경쟁에서 밀리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분위기다. 물론 약국이 약사의 핵심 직역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실제 지역 약국은 초고령사회와 돌봄통합 시대를 맞아 방문약료와 다제약물관리, 공공심야약국 등 새로운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지역 약사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문제는 ‘균형’이다. 약사 직능의 미래가 특정 직역에만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 결국 다른 영역의 공백이나 대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부 지방 병원과 산업계, 공직 분야에서는 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약대 6년제 도입의 목적은 단순히 공부를 2년 더 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약사를 키워내겠다는 사회적 약속에 가까웠다. 그 약속이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2026-05-13 06:00:36김지은 기자 -
[기자의 눈] 반값 감기약, 알고보니 사용기한도 절반?[데일리팜=강혜경 기자] 약사사회의 거센 우려에도 불구하고 창고형 약국의 개설 속도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환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손길이나 복약 히스토리보다는 '얼마나 싸게 떼어와 얼마의 마진을 남기느냐'가 지상 과제가 된 창고형 약국은 더 이상 입지도 중요치 않다. 너른 주차장만 있다면 마트 안이든 변두리든 '가격'이라는 강력한 무기에 이끌린 소비자들을 찾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근 기자가 방문한 한 창고형 약국에서도 그 위력을 실감했다.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인 짜먹는 감기약의 가격표는 단돈 1500원. 평소 동네 약국에서 사던 가격의 딱 절반이었다. '득템'이라는 생각에 콧물약, 기침약, 종합감기약 등을 카트에 골고루 담았다. 비밀은 집에 돌아와 약 상자를 정리하면서 밝혀졌다. 약 아랫면에 적힌 사용기한은 올해 12월. 사용기한이 7개월 남짓 남은 약들이었다. 하지만 매장 어디에도 사용기한 임박에 대한 안내는 없었다. '사용기한이 지나기 전에 아플 일이 있을까?', '주변에 나눔이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합리적 소비였다는 자부심은 순식간에 처치 곤란한 계륵을 떠안은 듯한 자괴감으로 변했다. 또 다른 창고형 약국에서도 유통기한이 올해 12월까지인 동일한 감기약을 동일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이 약국의 경우 제품별 사용기한을 명시해 소비자들이 유기가 짧은 약임을 알게 했다. '유기 임박약'에 대한 판매 기준이 명확치 않다 보니, 일반 약국에서는 반품하는 약들이 창고형 약국에서는 반값에 판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혹해서 샀다가 집에 오니 계륵이 되는 현상은 기자의 개인적 경험에 그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이 창고형 약국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3%가 기자처럼 계획에 없던 추가 구매를 했다. '상비용'이라는 심리적 위안과 '진열 자극'이 결합된 결과다. 문제는 이 반값의 유혹이 실제 가계 경제에 도움을 주느냐다. 조사 결과 동네약국에서 3만원 이상 지출하는 비율은 3.8%에 불과했지만 창고형 약국에서는 그 비율이 무려 41.5%까지 치솟았다. 낱알 단가는 낮아졌을 지언정 대용량과 묶음 판매 전략에 휘말려 전체 지출액은 오히려 늘어난 역설적 상황이다. 결국 62.2%의 이용자가 가정 내 보관량 증가를 경험했고, 40%에 육박하는 이들이 사용하지 않고 남은 약을 '상비'라는 이름으로 쌓아두고 있었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의약품이 소비재화로 변질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우유 한 팩을 살 때도 제조일자를 따지며 신선도를 살피고, 첨가물표를 보는 것과 달리 창고형 약국에서 약은 마치 과자나 생필품처럼 카트에 담긴다. 마치 참치캔이나 스팸 같은 가공햄을 살 때와 유사한 양상이다. 이 제품들을 살 때 일일이 유통기한을 살피지 않는 것처럼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기준 약국에서 구입하는 일반약 대부분의 유통기한은 28년으로 길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세심한 복약지도와 병용 약물 확인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실제로 외부에서 약을 산 소비자의 64.4%가 정작 복용 방법은 동네 약국에 가서 묻는다는 통계는 외연 확장에 급급한 대형 약국들이 보건의료적 책임은 지역 약국에 떠넘기는 안전의 외주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AI가 처방 데이터를 분석하고 적합한 약과 건기식까지 추천해 주는 시대라지만 환자의 안색을 살피고 사용기한과 복용량을 세심히 조율하는 약사의 교감과 책임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챙겨먹어 소진할 수 있는 영양제도 아닌, 감기약을 사두고 아프기를 기다리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 진정한 합리적 소비는 1500원이라는 가격표가 아니라 가치있는 소비를 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유통기한이 절반인 약을 반값에 샀다고 좋아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보건의료적 기회비용과 안전의 공백이 너무나 크다.2026-05-12 06:00:38강혜경 기자 -
[기자의눈] 의료쇼핑 관리 강화, 혼란보다 실익이 크다[데일리팜=정흥준 기자]올해 11월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의료 과다이용에 대한 실시간 관리가 이뤄진다. 의료기관에 환자의 진료 이력을 공유하고, 급여 기준을 지키도록 안내하는 시스템이다. 그동안 환자 진료 이력을 알 수 없어 급여 삭감을 피할 수 있었던 사례들도 앞으로는 예외 없이 삭감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의료기관과 환자 간 실랑이 등 현장 혼란을 우려한다. “왜 진료(처치)를 해주지 않느냐”는 환자 불만을 의료기관이 모두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공감이 가는 바지만 실익을 따져본다면 의료 과다이용 실시간 관리는 적용 범위를 지속 확대할 필요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3년 외래 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12만명의 환자가 연 평균 201회의 외래 진료를 받고 있다. 그 중 연 366회를 넘기는 환자도 약 2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12만명이 연간 사용하는 진료비는 1인당 606만원으로 합산 7323억원에 달한다. 0.2%의 환자가 전체 진료비 36조 1660억원의 1.5%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2024년 하반기부터 연 365회가 넘는 외래 이용 시 환자 본인부담금을 90%로 상향했고, 현재 연 300회로 기준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과다 의료 이용 관리에 대한 정부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오는 7월 ‘적정의료이용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관리 항목을 선정한다. 11월~12월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 1월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심평원도 현장 우려와 반발을 고려해 2~3개 관리 항목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이미 급여기준이 마련돼있는 항목을 선정하기 때문에 실시간 정보 공유 시스템은 사전 알림에 가까운 서비스다. 사후 삭감될 수 있으니 환자 진료 이력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으로 볼 수 있다. 의료기관은 실시간 관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실시간 정보를 확인해 급여 기준을 지키겠다는 수동적 태도를 넘어, 중복 진료와 과잉 외래를 관리하는 역할을 새롭게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실시간 관리 이후 과다 의료 이용 절감에 대한 효과를 파악하고, 절감된 재정에 대한 기여도를 주장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실시간 관리 시스템은 진료 행위에 관여하는 구속적 도구가 아닌, 만성질환 관리와 적정 진료에 대한 성과지표를 만들기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심평원은 제도 안착을 위해 의료계 협조를 당부하고 있다. 내년 2~3개의 관리항목으로 속도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추가 항목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확대 운영할 예정인데 곧 구성될 ‘적정의료이용심의위원회’가 오히려 범위 확대에 허들로 작용하지 않도록 운영돼야 할 것이다.2026-05-08 06:00:38정흥준 기자 -
[기자의 눈] 코스피 7000과 바이오 디스카운트[데일리팜=김진구 기자] 올해 국내 증시는 가히 기록적이다. 연초 4309로 출발한 코스피는 5월 6일 종가기준 7384.56으로, 불과 4개월여 만에 70%가 넘는 경이로운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대다수 종목이 거침없이 질주하는 동안 제약바이오 섹터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연초 대비 KRX 헬스케어 지수는 4979.93에서 4658.66으로 오히려 6.4% 뒷걸음질 쳤다. KRX지수를 구성하는 전체 28개 업종 중 연초 대비 지수가 후퇴한 곳은 헬스케어가 유일하다. 시장의 체급은 비약적으로 커졌으나 바이오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히려 냉소적으로 변했다. 이른바 ‘바이오 디스카운트’의 현주소다. 바이오 디스카운트라는 오명은 현장의 기업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시장의 신뢰를 저버린 대가다. 제약바이오는 당장의 실적이 아닌 ‘가능성’을 먹고 사는 산업이다. 그 가능성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는 공시와 데이터다. 그러나 최근 삼천당제약 사례는 이 연결고리가 얼마나 쉽게 끊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천당제약은 핵심 파이프라인의 해외진출 성과를 공시가 아닌, 보도자료로 배포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후로 제출된 공시에서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나 확정된 수치가 빠졌다. 삼천당제약은 이후로도 재공시를 반복하며 투자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결국 한국거래소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고, '양치기 공시'라는 오명과 함께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신뢰의 파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악재 발표 전 경영진이 지분을 매각하거나, 임상 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홍보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러한 행태가 반복될 때마다 데이터로 증명해야 할 신약 개발의 영역은 '희망 고문'의 장으로 변질됐다. 이 과정에서 누적된 학습된 공포는 제약바이오산업 전체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굳어졌다. 정부의 정책 일관성 부족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구호와 보건복지부의 "건보 재정을 위해 약가를 깎겠다"는 칼날의 충돌이 매년 되풀이된다. 제약바이오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투입되는 고위험 산업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기업들은 긴 호흡의 R&D에 집중하기보다, 당장의 생존을 위한 단기 성과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 바이오 생태계를 받쳐줄 자본의 성격도 문제다. 국내 제약바이오 투자는 여전히 '뉴스에 사고 공시에 파는' 단기 테마성 자금이 주류를 이룬다. 신약 개발의 긴 호흡을 이해하고 함께 버텨줄 기관 투자자나 전문 벤처캐피털(VC)의 비중이 작다 보니, 시장 전체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10년 넘는 고통의 시간을 견딜 '인내심 있는 자본'이 부족한 셈이다. 기업의 모럴해저드가 불신을 낳고, 정부의 엇박자 행정이 불확실성을 키우며, 단기 차익에 매몰된 자본이 변동성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바이오 디스카운트'라는 족쇄를 만들었다. 코스피 7000 시대에 걸맞는 제약바이오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 족쇄를 풀어내야 한다. 시작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체질 개선이다. 기업은 투명한 데이터로 시장을 설득하고, 정부는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마련하며, 투자자 역시 산업의 본질을 꿰뚫는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 신뢰라는 자산을 잃은 산업에 미래는 없다.2026-05-07 06:00:38김진구 기자 -
[기자의 눈] 신약 강국과 코리아 패싱은 공존할 수 없다[데일리팜=이정환 기자] 이재명 정부는 '글로벌 제약 강국 도약'과 '중증·희귀난치질환 환자 접근성 강화', '혁신신약 가치 보상 확대'를 목표로 제약바이오 산업 진흥 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한 약가제도 개편안의 궁극적인 목표도 '신약 창출·필수약 안정공급·환자 급여 접근성 확대'를 위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체질 전환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 정책 비전에도 불구하고 '신약 코리아 패싱'은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혁신성을 입증한 신약 개발 제약사가 한국 시장 출시를 후순위로 미루거나, 아예 출시를 포기하는 현상으로부터 우리나라 정부는 자유롭지 못하다. 신약 코리아 패싱은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사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능력이 빠르게 향상하면서 앞으로는 국내 제약사도 코리아 패싱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미래가 예상된다. SK바이오팜과 동아ST의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제약 강국을 표방한 우리나라가 코리아 패싱 현상으로 인한 환자 치료 주권을 걱정하는 실정이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해결책 마련을 위한 정부 차원의 고민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신약 코리아 패싱의 원인은 결국 '낮은 신약 건보급여 약가'다. 한국의 신약 급여 상한가는 OECD 평균의 절반, 미국의 30분의 1 수준이란 비판이 따라 붙는다. 한국의 낮은 약가를 수용했을 때 다른 국가 역시 한국 가격을 참조할 가능성이 생기면서 제약사들이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고, 이에 대한 최종 피해는 환자 즉, 국민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우리나라 정부가 신약 약가를 최대한 낮게 책정하려는 이유도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재정을 단일 재원으로 신약 약가를 책정하려다 보니 신약 가치에 상응하는 충분한 가격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결국 제약 바이오 강국 실현과 신약 코리아 패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신약의 적정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가격 책정을 위한 넉넉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건보재정 외 신약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별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 노력이 당장 필요하다는 얘기다. 건보재정 지속 가능성·건전성 확보와 환자 의약품 접근성 강화란 상충 과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해법 역시 건보재정 단일 재원 탈피로 귀결된다. 별도 재원 마련이란 국가적 숙제이자 숙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은 여파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는 제네릭 약가인하를 통한 약제비 건보재정 절감으로 이어져 왔다.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를 둘러싼 보건복지부, 글로벌 제약사, 국내 제약사, 환자 단체 간 치열한 눈치싸움이 이어지다 보니 애먼 제네릭 등만 터져나간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초고령 시대 진입과 초고가 신약들의 출시 증가 속 혁신 신약 급여 확대를 건보재정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복지부와 국내 제약산업, 환자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비좁아질 수 밖에 없다. 건보재정 외 별도 재원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논의될 수 있다. 영국의 항암제 기금 등 초고가 의약품 전용 기금을 신설하거나 담배세·복권 수익금 등을 일부 재원으로 혁신 신약 급여에 쓸 수 있게 허용하는 정책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정책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국회에서 입법안이 발의돼 왔다. 관건은 정부 의지다. 복지부에게만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더 나아가서는 국무총리, 대통령의 정책 결단이 필요하다. 애초 제약 바이오 강국 도약, 환자 신약 접근성 강화란 정책 목표를 내건 주체 아닌가. 국회에서는 연일 혁신 신약의 신속 급여, 적응증 확대 급여를 촉구하는 정책 토론회가 열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무거운 책임은 으레 복지부 보험약제과에게 돌아가는 풍경이 반복된다. 복지부에게만 신약 급여 확대, 코리아 패싱 문제에 대한 해법 마련을 재촉할 수 있나. 복지부를 넘어 재정당국이 앞장서서 사회적 합의를 거친 건보재정 외 별도 재원 마련이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성을 띠고 '신약 강국과 코리아 패싱'이 공존하는 모순을 즉각 해소해야 할 때다. "한다면 한다"는 대통령의 정치적 슬로건이 혁신 신약 급여 접근성 강화, 재원 확충에 예외여선 안 된다.2026-05-06 06:00:38이정환 기자 -
[기자의 눈] 제네릭 넘어 신약…국내 제약사의 체질 전환[데일리팜=최다은 기자] 국내 제약업계의 신약 개발 도전이 전환점에 들어섰다. 과거 제네릭과 단순 위탁생산(CMO)에 머물렀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차세대 항암제부터 비만 치료제까지 개발 범위를 넓히며 신약 중심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흐름이 짙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후보물질을 도입해 후기 임상이나 판매에 집중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초기 물질 발굴부터 임상 1상, 2상, 나아가 후기 임상까지 직접 주도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신약 개발 전주기를 내재화하려는 전략이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한미약품, 대웅제약, JW중외제약, HK이노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항암, 비만, 면역질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신약 후보물질을 확대하며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직접 개발 기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 물질 발굴부터 임상 1상, 2상, 나아가 후기 임상까지 자체적으로 끌고 가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기술 도입 중심에서 벗어나 연구개발 전주기를 내재화하려는 전략 전환이다. 대표적으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항체·약물접합체 ADC 항암제 개발에 속도를 내며 바이오 신약 영역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를 통해 축적한 기술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는 시도다. 특히 비만 치료제와 항암제는 차세대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지만, 기술 혁신에 따라 판도가 빠르게 재편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다중 기전 기반 비만 치료제와 차세대 ADC 항암제는 국내 기업들이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 수 있는 대표 분야로 꼽힌다. 한미약품은 이중항체 기반 항암제와 비만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동시에 확장하며 가장 공격적인 연구개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중 기전 비만 신약과 항암 플랫폼을 양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JW중외제약은 통풍 치료제를 임상 3상까지 자체 개발하며 후기 임상 자력화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단순 파이프라인 확보를 넘어 상업화 직전 단계까지 개발 역량을 내재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HK이노엔은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도입과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병행하며 자체 연구개발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외부 기술을 활용하되 장기적으로는 독자 파이프라인 확보로 이어가겠다는 복합 전략이다. 종근당은 신약개발 자회사 아첼라를 통해, 유한양행은 자회사 이뮨온시아를 통해 바이오 신약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별도 법인을 통한 전문화 전략으로 연구 효율성과 성공 가능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제약업계의 신약 개발 역량 강화는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 고도화와 재무 여건 강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지표다. 다만 아직은 과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부 기업은 기술 도입과 자체 개발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모색 중이며 임상 단계에서 상업화로 이어지는 사례는 제한적이다. 초기 기대감과 실제 성과 간 괴리도 여전히 있다. 그럼에도 국내 제약사들이 방향을 전환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네릭 약가 인하와 CMO 경쟁 심화로 기존 사업 모델만으로는 성장 한계가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자체 신약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입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스스로 신약 개발의 방향을 설계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축적된 생산 역량과 글로벌 진출 경험, 점차 강화되는 연구개발 기반이 맞물리며 산업 전반의 체질도 점차 바뀌고 있다.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중심에서 신약으로 연구개발 구조를 전환하려는 도전이 일시적 흐름에 그칠지,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하는 전환점이 될지는 임상 성과와 사업화 역량에 달려 있다. 국내사들의 도전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산업의 방향을 바꾸는 시도에 가깝다. 그만큼 시장의 시선도 성과 중심을 넘어 과정과 축적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흐름을 지속된다면, 제네릭 강국을 넘어 신약 개발 강국으로 도약은 더 이상 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2026-04-30 06:00:38최다은 기자 -
[기자의 눈] 바이오기업 자금조달 훈풍과 유상증자 순기능[데일리팜=차지현 기자]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자금조달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4월 중순까지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 진행한 유상증자는 총 30건, 조달 규모는 7299억원에 달한다. 수억원대 소규모 유상증자부터 1000억원을 웃도는 대형 유상증자까지 자금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신주를 발행해 외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자본시장에서 유상증자는 흔히 악재로 여겨진다. 신주 발행으로 인해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되고 주당 가치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유상증자 공시 발표 직후 해당 기업의 주가가 급락하는 모습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러나 유상증자가 무조건 부정적인 이벤트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유상증자는 단순히 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성장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전략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명확한 성장 로드맵 없이 운영자금 확보나 과거 부채 상환에 그치는 경우라면 투자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술특례 등을 통해 상장한 기술성장 기업이 관리종목 지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자본을 확충하는 경우라면 더욱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이 같은 방어적 자금 조달은 펀더멘털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아 동일한 재무 부담이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조달된 자금이 연구개발(R&D), 임상 확대, 생산시설 투자로 이어진다면 이는 우호적인 신호로 해석 가능하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에는 평균 10년, 1조원 이상의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바이오 산업에서 자금 조달은 불가피한 선택인 만큼 미래를 위한 실탄을 제때 확보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 가치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결정적인 승부수가 될 수 있다. 제3자배정이나 일반공모 등 조달 방법이나 투자자 구성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같은 유상증자라도 발행가 할인율이나 프리미엄 여부, 보호예수 조건 등 세부 조건에 따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천차만별이다. 참여 투자자가 단순 재무적 투자자(FI)인지 전략적 투자자(SI)인지에 따라서도 단순 자금 유입에 그칠지 아니면 사업 협력과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지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유상증자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이뮨온시아의 경우 핵심 파이프라인인 면역항암제 'IMC-001'의 상용화를 가속하기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해당 물질의 임상 결과가 기대치를 상회한 데다 희귀의약품(ODD)으로 지정되며 인허가 리스크가 낮아진 상황에서 발빠르게 생산 공정(CMC)에 착수, 상용화 골든타임을 잡기 위한 전략이다. 자금 조달 방식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흐름을 보면 제3자배정 쏠림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올 초부터 현재까지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 발표한 유상증자 30건 가운데 대부분이 제3자배정으로 진행됐고 일반 공모는 이뮨온시아와 아미코젠 단 2건에 불과하다. 시장의 큰 손들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베팅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주주 가치 희석 우려가 상존하는 만큼 유상증자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모든 유상증자를 동일한 악재로 보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 자금 조달은 기업의 현재와 방향을 드러내는 신호이자 향후 성장 전략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자금 조달이 국내 바이오 산업의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2026-04-29 06:00:36차지현 기자 -
[기자의 눈] 6개월 결제 묶는 의료기기법…현장 적용 관건[데일리팜=황병우 기자] ‘6개월 이내 결제’ 기준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기기법 개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거래 투명성 강화를 겨냥한 규제지만, 실제 유통 현장에서는 자금 운용과 거래 구조 전반에 변화를 요구하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불공정 거래 관행을 개선하고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향성 자체는 이견이 없다. 다만 제도 설계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2027년 12월 31일 시행 예정인 개정 의료기기법은 특수관계 거래 제한, 대금 결제기한 명문화, 계약서 작성 의무 및 특수관계 의료기관 현황 보고 등 유통질서 관리체계 강화를 핵심으로 한다. 구조적으로는 유통과정의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과 투명성 강화에 방점을 둔 '유통 질서 정상화'를 위한 규제 장치가 보다 구체화된 셈이다. 문제는 이 장치들이 현실과 맞물릴 때다. 현재 의료기기 유통은 단순한 공급 구조를 넘어 병원, 판매업자, 금융 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생태계다. 이 가운데 업계에서는 병원과의 거래에서 일정 기간 이상의 결제 관행이 존재해 왔다는 점을 들어, 제도 변화가 실제 거래 환경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6개월 이내 결제' 기준은 원칙적으로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로 해석되지만, 예외 기준과 적용 방식이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을 경우 일부 기업의 자금 운용이나 거래 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자금 압박이 현실화될 경우 일부 유통업체는 거래 규모를 줄이거나 공급을 지연할 수밖에 없다. 이는 유통 질서 개선이 아닌 거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수관계 거래 제한 역시 취지는 분명하다. 다만 국내 의료기기 시장에서 형성된 다양한 유통 구조를 감안할 때, 일부에서는 기존 거래 방식이 단순한 불공정 거래로만 해석되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결국 이번 법 개정의 핵심은 '규제 도입'을 넘어 '현장 정착'이 더 강조된다.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규제의 방향성뿐 아니라 적용 방식과 세부 기준이 중요하다. 예외 인정 범위, 단계적 적용 여부, 업계 규모별 영향 등을 고려한 세밀한 설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정책 취지가 시장 혼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시행에 앞서 진행되는 의견 수렴의 자리는 시행 전 제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논의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와 정책 당국 간 시각 차이를 좁히고, 실제 작동 가능한 접점을 찾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도는 만들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순간 완성된다. 의료기기법 개정이 또 하나의 규제에 그칠지, 아니면 유통 질서를 바꾸는 전환점이 될지는 지금부터의 설계에 달려 있다.2026-04-28 06:00:38황병우 기자 -
[기자의 눈] 항암제, 미충족 수요에 대한 형평성[데일리팜=손형민 기자] 항암 치료는 더 이상 하나의 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과거 세포독성항암제가 치료의 중심이던 시기에는 어떤 암인가가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암종 안에서도 바이오마커에 따라 전혀 다른 약제가 선택되고 치료 순서와 병용 전략까지 달라진다. 하나의 질환이 아니라 여러 개의 질환으로 쪼개진 것과 다름없는 구조다. 이 같은 변화는 특정 영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비소세포폐암은 다양한 유전자 변이를 중심으로 치료가 세분화됐고, 대장암 역시 BRAF 등 바이오마커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담도암과 같은 희귀암에서도 표적 기반 치료가 확대되는 흐름이다. 과거에는 선택지가 제한적이던 질환에서도 이제는 치료 전략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문제는 이러한 세분화가 단순한 선택지 증가에 그치지 않고, 치료 적용 범위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전이성 환자 중심으로 적용되던 치료들이 점차 1~3기, 즉 조기 단계 환자군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수술 전후 보조요법, 유지요법, 병용요법이 동시에 논의되면서 치료는 더 이른 시점부터, 더 길게 이어지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물론 환자 입장에서는 가능한 모든 치료를 급여 적용받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새롭게 등장한 약제들이 더 많은 환자에게 더 이른 단계에서 쓰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치료 기회는 넓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특정 질환이 아니라 여러 암종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고민을 던진다. 각각의 치료 확장은 타당한 선택일 수 있다. 다만 같은 흐름이 다양한 암종에서 반복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제한된 자원 안에서 모든 영역을 동일한 속도로 끌어올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영역에 먼저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불가피해진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지점이 있다. 특정 암종에서 논의가 활발하고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암종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충족 수요는 특정 질환에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며 다양한 암종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 어느 한 영역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사이 다른 영역의 공백이 상대적으로 가려질 가능성도 함께 존재한다. 결국 질문은 분명하다. '늘어난 치료 옵션을 어디까지, 어떤 기준으로 적용할 것인가'. 모든 치료를 모든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항암 치료의 진보는 분명 환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그 기회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특정 영역에 쏠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미충족 수요라는 개념을 보다 넓은 시선에서 다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2026-04-24 06:00:40손형민 기자 -
[기자의 눈] 의약품 유통 선진화 그늘…거점도매 논란의 본질[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최근 의약품 유통업계의 최대 화두는 대웅제약이 추진 중인 ‘권역별 거점도매’ 정책이다. 한 대형 제약사의 유통 혁신 실험은 단순한 공급 구조 개편을 넘어 도매업계 전반과 약사사회까지 파장을 넓히며 시장의 긴장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논란의 출발점은 비교적 명확하다. 해당 제약사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입찰 공고를 내고, 도매업체들로부터 참가의향서와 비밀유지 서약서를 접수했다. 전국을 10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을 대표할 거점도매 5곳을 선정해 의약품 유통을 일원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표면적으로는 효율화와 안정화를 내세웠지만 구조 자체는 기존 유통 질서에 영향을 미치기 충분했다. 사실 거점도매 전략이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5년 전에도 일부 제약사가 권역별 거점도매를 시도해 노란이 된 바 있으며, 이 제약사도 현재 유통처를 약 50여 곳으로 하는 사실상 거점도매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업체를 5곳으로 대폭 축소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기존 도매업체들은 사실상 ‘도도매’ 형태로 전환돼 선정된 거점도매를 통해서만 의약품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 밀려났다고 인식할 상황이 됐다. 유통 단계 축소라는 명분 뒤 시장 지배력 재편이라는 현실이 겹쳐 보이는 이유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으로는 비용 절감과 채권 리스크 축소가 꼽힌다. 자율경쟁 입찰 방식 도입으로 유통 마진을 낮출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사실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합리성이 시장 전체의 균형과 충돌할 때 발생한다. 최근에는 거점도매로 선정된 일부 업체의 반품 규정까지 알려지며 논란은 한층 증폭됐다. 유통 조건이 특정 방향으로 재편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약국과 환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선 도매와 약국가에서는 일부 품목의 수급 불안정 조짐이 감지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정책 시행 초기의 진통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장의 불안감이 적지 않다. 약사 단체들이 해당 정책이 유통 생태계를 왜곡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회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서영석 의원실 주도로 유통협회, 제약사, 약사회가 한자리에 모여 추진 경위와 쟁점을 점검하는 자리가 마련된 점은 이번 사안의 파급력을 방증한다. 제약사는 입장문을 내고 이번 정책은 단순 비용 절감이 아닌 오히려 약국 현장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며 당위성을 설명했다. 품질이 보장된 배송과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블록형 거점도매라는 논리다. 데이터 기반 실시간 관리 시스템을 통해 기존 의약품 유통 구조의 고질적 문제였던 배송 불확실성을 개선한다는 의지도 밝혔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유통 채널을 축소하고 거래 구조를 재편하는 방식이 과연 약국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지 여부다. 더 나아가 이번 정책이 궁극적으로 자사 온라인몰 중심 거래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시장 집중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약품 유통은 단순 물류의 문제로 볼 대상이 아니다. 의약품이라는 특수재를 다루는 영역에서 유통 구조의 변화는 곧 환자의 접근성과 직결된다. 기업의 효율과 시장의 공정, 그리고 환자의 안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가장 약한 고리로 전가된다. 지금 벌어지는 거점도매를 둘러싼 힘겨루기, 그 끝에는 의약품 전달의 최일선인 약국, 그리고 환자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2026-04-23 06:00:38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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