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조사 2년, '윤리경영' 간과했단 자멸
- 최은택
- 2009-01-19 07: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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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베이트 관리 시스템화···제약협, 면피용 구호만 쏟아내
2006년 10월 어느날 공습경보···제약 두 곳 급습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보건의료분야를 포함해 불공정행위 실태파악을 벌일 것이라는 발표가 나온 지 이틀만이었다.
조사반은 이날을 시작으로 다른 제약사와 도매업체, 다국적 제약사 순으로 조사대상을 확대해 다음해 2월 중순까지 무려 26개 업체와 제약협회를 조사하면서 업계 전체를 송두리채 뒤집어 놨다.
제약 및 그 의약품 유통분야의 제도개선 과제발굴과 불공정행위를 시정하기 위한 시정개선 작업의 일환이라는 게 조사목표이자 명분이었다.
공정위는 이중 17개 제약사를 처분대상으로 분류, 2007년 11월 1차 발표에서 동아·한미 등 10개 제약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199억원 상당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어 1년 2개월이 지난 이달 15일 화이자 등 7개 제약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214억원 상당의 과징금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제약사들이 의료기관과 약국 등에 제공한 현·금품 등 불공정거래행위 유형과 사례들도 낱낱이 공개됐음은 물론이다.
이번 조사는 외형만 보면 17개 제약사에 400억원 규모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처분이 내려졌다는 수준의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이는 공정위가 검찰과 복지부, 국세청 등에 고발해 제약사의 불법적인 리베이트 수수관행을 발본색원하겠다던 당초의 의기가 용두사미로 끝났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 2년여 동안 진행돼온 상황을 정리해보면 파괴력이 상당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CP' 도입···윤리규약 개정···기부금 금지···지정기탁
가장 큰 변화는 제약업계의 자정노력이다.
공정위의 기습조사에 잠깐 동안 ‘아노미’ 상태에 빠졌던 제약계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처벌을 모면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 이른바 ‘선수치기’ 전략.
그 첫번째가 공정위가 적극 권장하는 ‘CP’(공정거래자율준수프로그램) 도입이었다.
제약협회는 회원제약사 53곳과 함께 2007년 5월9일 공정위 위원장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등을 초청한 가운데 CP도입 선포식을 ‘멋지게’ 진행했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창고속에서 먼지만 쌓이던 공정경쟁규약(COC)를 꺼내와 다음달 25일 개정된 세부운영 지침을 발표했다.
하나같이 공정위의 시퍼런 칼날을 무디게 하기 위한 ‘구애’ 전략임은 불문가지다. 제약협회는 같은 해 8월30일에는 공정위에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조사를 받은 제약사들이 100억원대 이상의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되자, 금액을 축소해보자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다음 달인 9월에는 다시 의약관련 행사 개별 협찬금지, 학술행사 부스 건당 200만원 이내, 2008년 2월에는 제3자 지정기탁제 등 ‘자정결의’ 시리즈를 잇따라 발표했다.
이런 일련의 구호들은 공정위 조사의 직격탄을 피해보려는 노력도 있지만, 이참에 의료기관에 리베이트를 주기 않아도 될만한 ‘핑계거리’를 찾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공정위 칼날의 위력이 약화된 지금, 이런 구호들이 '실행모드'로 바뀌기까지는 적지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PMS제도 전면 정비···실거래가 조사 제약사까지

복지부는 공정위 1차 발표가 있기 직전인 2007년 10월28일 유통비리 근절대책을 긴급 발표했다.
이 대책에는 PMS 제도 정비, 실거래가 조사대상 확대, 저가구매인센티브, 실거래가 자진신고제 등 공정위 조사내용과 부합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공정위 발표이후 곧바로 복지부가 바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사전 조율됐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복지부가 내놓은 유통제도개선 TFT 구성안은 복지부·식약청·심평원 뿐 아니라 공정위까지 참여한 특별기구로 출범했다.
이 TFT는 매우 중요한 데, 사실상 공정위에 이은 제약 리베이트 2차 조사를 위해 2008년 4월까지 한시적으로 설치됐었다.
대형제약사에 만연한 불법리베이트 관행이 중소제약에서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추측하고, 300억~600억원대 매출규모의 제약사를 털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실제 TFT는 도매업체를 포함해 22개 업체를 추가 조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 결과가 판도를 바꿔놨다.
새로 당선된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해 반기업정책을 대폭 수정해 놨는데, TFT의 활동도 여기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중소제약 리베이트 2차 조사, 새 정부가 막았다"

이런 와중에도 공정위는 2008년 6월부터 대형병원 40여곳을 대상으로 기부금 내역 조사에 착수했다.
불법리베이트를 옥죄기 위한 후속방안들도 계속 나왔다.
복지부는 불법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약사와 한약사에게 2월의 자격정지 처분을 내리고 행정처분 감경기준을 배제하는 약사법시행규칙을 개정,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불법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의 행정처분을 강화하는 입법안도 같은 달 입법예고했다.
이달 13일에는 복지부장관이 불법리베이트와 연루된 의약품의 약값을 직권 조정할 수 있도록 요양급여에 관한 규칙을 개정, 고시했다.
이와 함께 복지부와 심평원은 불법리베이트 및 실거래가 조사를 위해 심평원 보험약제실에 속해 있던 사후관리팀을 직제개편을 통해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로 배속시킬 예정이다.
공정위 조사는 이처럼 제약협회와 제약계의 자정노력, 제도와 관리정책의 시스템화를 촉발시켰다.
또한 제약산업 내에는 향후 경쟁력 확보를 위해 ‘윤리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의식을 갖게 만들었다.
바야흐로 ‘윤리경영’과 ‘투명성’이라는 어색한 화두가 제약산업 언저리를 유령처럼 떠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제약협회 등이 도입한 CP는 아직 구색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실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3자 지정기탁제는 제대로 운영조차 되지 않는데다, 처음부터 KRPIA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었다.
작년 제약사 비자금 사건···제약 자정결의에 찬물
결정타는 지난해 10월에 폭로된 한 제약사의 비자금 사건이었다.
공정위 1차 발표에서 과징금을 받았던 제약사가 불법리베이트를 제공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회사는 일부 지점에 한정된 얘기라고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실제 지킬 수 있고, 지키지 않은 경우 스스로 칼을 댈 수 있는 자정의지가 확고한 지는 가늠할 수 없다.
게다가 두 협회는 지금도 윤리규약을 별도로 운영할 뿐, 통합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제약사업 내 '한 지붕 두 가족'이 각각의 율법에 따라 윤리경영을 실현하겠다는 것인데, 알고 보면 그 ‘율법’의 90%이상은 별반 다르지도 않다.
이와는 별개로 1·2차 발표에 포함된 제약사들과 관련 품목들에 대한 행정처분 수위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불법리베이트 연루 품목은 구법에 따라 판매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난 1차 발표 제약사 품목에 대해 아직 이 처분이 내려지지 않았다.
복지부 담당 과장과 사무관은 내용조차 알지 못할 만큼 관심밖이다. 불법리베이트를 제공받은 병의원과 의사에 대한 처분도 오리무중이기는 마찬가지다.
리베이트 적발품목 약가인하-의사처벌 쟁점 산재
1차 때도 의료기관과 의사들은 별도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불법리베이트 연루 품목에 대한 약가 직권조정 또한 쟁점사안이다.
행위시를 근거로 하면,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1·2차 발표 연루 품목 모두 약가인하를 면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사실이 드러난, 발표시점을 근거로 하면 2차 발표 제약사 품목은 대상에 포함되고 1차 발표 제약사 품목은 제외되는 불공정한 결과도 초래될 수 있다.
정부차원의 신속한 법률검토와 유권해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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