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가제 쉽게 갈일 아니다
- 데일리팜
- 2006-08-07 06: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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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현행 실구입가 상환제를 예고도 없이 고시가제로 전환하겠다고 언급하고 나선데 대해 그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것도 공식적인 절차를 통한 정책발표가 아니라 제약협회 이사장단과의 면담자리에서 나왔다. 보험약 가격제도 내지 청구제도의 전환이 얼마나 중차대한 현안인지를 감안한다면 치밀한 계획이나 준비 없이는 마구 내뱉을 발언이 아니기에 우리는 못내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실구입가제는 이미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우리도 실구입제를 전면 폐지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을 수차례 적시한 바 있다. 따라서 장관이 어떠한 형태로든 실구입가제에 손질을 가하는데 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실구입제의 문제를 해소할 대안이 단순히 과거 고시가제로의 환원은 아니다. 고시가제 또한 숱한 문제점을 앉고 있었던 제도였기에 실구입가제의 탈출구가 고시가제가 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실구입가제는 의약분업 시행 7개월여 전인 1999년 11월 15일 단행됐다. 당시 정부는 실구입가제를 시행하면서 총 1만6,123개 품목의 기준약가를 새로 발표했는데, 이중 1만3,922개 품목의 보험약가를 평균 30.7% 무더기 인하했다. 실입구제 하에서 보험약의 마진을 없애는 대신 내려진 조치였기에 제약업체들은 음성적인 뒷거래가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 하에 사상초유의 대규모 약가인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실구입가제는 예상과 달리 빗나갔다. 유통마진을 제로화 시켜 공공재로 정리된 보험약은 시장논리에서 그렇게 적용되지 않았다. 얼마안가 음성적인 뒷거래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과거보다 못지않은 뒷마진이 거래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실구입제는 이렇듯 더 이상 존속의 의미가 없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실구입가제를 폐지하고 고시가제로 환원하고자 하는 복지부 장관의 속내를 이해하기는 한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고시가제가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봐야 한다고 본다. 고시가제 도입은 실구입가제의 폐지이고 이는 보험약의 공공재적 성격을 일정부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서는 이미 공공재로써의 의미를 상실해 버렸지만 제도적으로도 보험약은 더 이상 공공재가 아님을 정부가 공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시가제 시행과 함께 공식적인 ‘유통마진율’을 정부가 어느 정도 설정하고 있는지 부터가 매우 중요한 요체다.
고시가제 하에서 공식적인 유통마진율을 주지 않는다면 고시가대로 구입하고 고시가대로 청구해야 한다. 이는 형태만 달랐지 실구입가제와 다르지 않기에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는 고시가제를 시행하려면 어떠한 형태로든 유통마진폭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장관이 적정마진에 대한 정확한 근거 데이터 없이 고시가제를 시행하면 지금이나 과거 보다 더 얼룩진 시장이 만들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보험약 유통마진을 인정해 준다고 해서 음성적인 뒷거래 마진이 없어진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음성적 시장이 여전할 확률이 큰 상태에서 유통마진율을 추가로 설정하면 의약품 유통시장은 더욱 혼탁해진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고시가제를 단순히 과거로의 회과방식으로 해서는 금물이다. 우리가 장관의 발언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이 대목이다. 아니 과거 고시가제로의 단순 회귀를 우리는 반대한다. 과거의 유통거래폭 24.17%나 행정지도선 14.17% 등의 방식을 원용한다면 유통시장은 음성적, 양성적 시장이 양립하게 되는 절름발이 형태를 띤다. 이는 정부의 약가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고시가제 역시 유명무실한 제도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과거의 고시가제가 되면 실구입가제 시행당시 약가를 무더기 인하했던 정부의 명분이 없어진다. 이는 보험약가를 다시 인상해야 한다는 제약사의 주장을 묵살하기 어렵게 하는 일이다. 제약사들은 시장에서 이중삼중의 부담을 지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시가제를 단순히 생각하면 정부가 스스로 대단한 부담을 안고가는 자충수를 두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장관의 발언 속에 ‘깊은 뜻’이 있기를 기대한다. 고시가제가 보험약의 공공재적 성격도 지키면서 시장기능도 살리는 두 마리 토기를 잡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 보험약에 대한 비용·효과적인 과학적 검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함과 동시에 품목별 또는 그것이 어렵다면 성분별이라도 탄력적인 차등 마진율 적용을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고시가격을 공공재라는 성격과 시장 가격기능을 조화시킨 ‘이상적인 약가’로 근접시키는 선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쉽다고 할 것인가. 이를 위한 중장기적인 연구나 마스터플랜 없이 과거의 고시가제와 같은 방식으로 쉽게 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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