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비대면 진료, 산업 논리 보다 공공성이 먼저다
- 강혜경 기자
- 2026-09-03 06: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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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팜=강혜경 기자] '다이어트 주사제 최저가 검색', '원하는 전문약 골라 담기'.
전자상거래 쇼핑몰의 프로모션 문구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뤄야 할 민간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현주소다. 환자 편의성을 앞세워 출발한 비대면 진료가 비급여 전문의약품의 가격 경쟁을 부추기고 무분별한 소비를 유도하는 약 쇼핑 창구로 변질된 지 오래다.
물론 비대면 진료 확대와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일리는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춘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고도화하고, 유망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혁신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산업적 논리 역시 무시할 수만은 없다.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비대면 의료 서비스가 도서·산간 지역 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 제공하는 접근성의 가치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혁신의 방향성이다. 일선 약국들이 플랫폼 제휴를 철회하며 등을 돌리는 이유는 기술 혁신 자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플랫폼이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뒤 공급자를 옥죄어온 '빅테크 잔혹사'의 기시감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뼈아프게 목격했다. 배달의민족은 무료배달 유료 멤버십으로 소비자를 묶어둔 뒤 중개 수수료 인상과 배달비 전가로 자영업자를 코너에 몰았다. 카카오택시 역시 무료 배차로 시장을 장악한 뒤 과도한 가맹 수수료와 유료 멤버십으로 기사들의 부담을 키웠다.
약국가가 민간 헬스케어 플랫폼을 바라보며 느끼는 공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닥터나우방지법으로 도매 유통을 통한 우회 수익이 막히면 플랫폼은 결국 병·의원과 약국에 중개 수수료와 시스템 사용료를 물리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확보할 공산이 크다.
더욱이 보건의료는 배달이나 택시와 같은 일반 상업 서비스와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의료와 의약품은 자본의 논리로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빈부나 지역에 상관없이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안전하게 누려야 할 보편적 공공재다.
만약 준비 없는 약 배송 전면 확대가 강행된다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는 막대하다. 본인 확인의 허점을 파고든 외국인·타인 명의 도용 '약 쇼핑'으로 건강보험 재정 누수가 심화돼 결국 국민의 건보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질병 내역과 처방 정보, 국가 의약품 유통 통계 등 민감한 의료 데이터가 민간 기업을 통해 해외로 무단 유출되거나 상업적으로 남용될 위험도 도사린다.
여기에 약 변질이나 오배송 사고가 발생해도 플랫폼과 배송기사는 책임을 회피하는 책임 공백 문제, 플랫폼 독점으로 인한 동네 약국의 연쇄 폐업, 중개 수수료와 과잉 처방 유도로 인한 환자 의료비 부담 극대화까지 겹치며 결국 '편리함의 탈을 쓴 의료 민영화'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보건당국의 대처는 무책임하다. 식약처는 전문약 명칭·가격 노출을 두고 모호한 법 해석으로 플랫폼에 면죄부를 줬고, 약 배송 완화를 추진해 온 인사의 입각 소식까지 겹치며 정책의 무게추가 공공성이 아닌 산업 논리로 기울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편입 시한인 12월 24일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스타트업 육성과 IT 산업 진흥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국민 건강과 의료 공공성이라는 기본 토대를 흔드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정부는 비급여 의약품 가격 노출 및 환자 유인 행위에 대한 엄격한 규제, 민간 독점을 견제할 공공 전자처방전달시스템 구축, 명확한 배송 사고 책임 소재 명시 등 제도적 안전망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배민과 카카오의 전철을 밟아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마저 민간 플랫폼의 수익 놀이터로 넘겨준다면, 12월의 제도화는 의료 공공성의 붕괴를 알리는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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