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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물용 구충제 파나쿠어와 약사의 소통

  • 데일리팜
  • 2019-09-23 14:49:47
  • 모연화 약사(경기 성남시 모약국)

“나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그 약을 샀지만 남편은 마지막 힘을 다해 그 약을 거부했다. 나는 한 꾀를 내어 병원에서 준 약을 캡슐에서 쏟아버리고 대신 그 약을 채워서 복용토록 했다. (중략) 나는 그 약을 믿었을까. 안 믿었던 거 같다. 그저 후회나 안 하자고, 하는데 까지 다 해보자고 한 짓이 아니었을까.”(박완서, 노년, 창작과비평사, 2002)

고양이 구충제 파나쿠어가 기적의 말기 암 치료제로 전국을 휩쓸고 있다. 개인의 체험과 완치에 대한 환상, 유튜브라는 뉴-미디어의 전파력까지 더해졌고 직구 세력까지 합심하여 때는 이때다 ‘팔고 있다’ 파나쿠어를 실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앞서 인용한 남편의 암 말기 병상을 지킨 작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 파나쿠어 영상 유튜브의 댓글을 보면 그 절절함에 뭉클하다.

한편 안타까웠다. ‘음모론’(제약회사와 의사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가격이 비싼 항암제를 팔기 위해 고양이 구충제를 제품화 하지 않는다는) 과 ‘불신임’(전문가의 말에 대한 불신임)과 ‘완치환상’(이것만 먹으면 완치할 수 있다는 환상)의 설득은 이성이 아닌 감성을 건드리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런 희망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 자체로 용서 받는 현실이 그저 씁쓸했다.

이런 일은 비단 파나쿠어 뿐만이 아니다. 매 해 기적의 OOO 는 언론을 휩쓸고, 모든 사람들의 집에 쌓이고 나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만약 어떤 병원에서 그런 사기를 쳤더라면 당장 고소감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약이나 민간요법은 속고 나면 그 뿐이고 뒤끝이 없다. 그게 도리어 생약이나 민간요법의 정당한 발전을 저해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사기꾼이 끼여들 수 있는 허점이 되고 있는 거나 아닌지.”(박완서, 노년, 창작과비평사, 2002)

그렇다. 사실 어떤 물질은 약이 되기 위해 ‘절차에 따른 정당한 발전 과정’을 거친다. 수십, 수백, 수천 번의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검증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써도 되는지의 임상 과정을 한다. 이후에도 사후 부작용 보고 및 관리를 통해 약의 이름을 유지한다. 실제 한 개인의 효능, 효험의 결과가 아니라 대다수의 인간에게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의 ‘정당한 발전 과정’은 어렵고 중요하다.

전문가는 이러한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조언과 설득을 꾸준히 해내가는 사람이다. 이번 파나쿠어 사건 직후 뉴미디어-약사들이 보여준 콘텐츠들과 그 댓글들을 통해 필자는 전문가의 소통에 대한 확장적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파나쿠어 복용은 가짜뉴스라고 표현한 의학기자와 암 전문의의 컨텐츠와는 사뭇 다르게 약사들의 컨텐츠는 ‘약이 되기까지의 정당한 과정’관점에서 파나쿠어를 바라본 것들이 많았다. 논문을 통해 효능이 입증되지 않아 위험이 크다고 소통하는 컨텐츠도 있고, 부작용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선택은 개인의 자유라고 소통하는 컨텐츠도 있었다.

대중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영상에는 고맙다는 댓글이 달리는 반면, 임상 3기는 끝나야 먹을 수 있다는 영상에는 당신이 말기 암이라면 안 먹겠느냐, 이런 걸 왜 올리느냐, 말기 암 환자의 절절한 마음을 알고 있느냐, 어차피 곧 죽는데, 못 먹을 이유가 있겠냐. 이럴 때는 좀 더 환자 입장에서 영상을 찍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댓글들을 보기 전에는 나 역시 약사로서, 영상을 만든다면, 거짓부렁이여~라고 말하는 콘텐츠를 만들지 싶었다. 그러나 어쩌면 시한부 환자가 완치 확신을 하고 파나쿠어를 먹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속더라도, 잠깐이라도 희망에 취해보고 싶을 뿐일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마음과 [안전성, 유효성]을 기반으로 [약의 정당한 절차를 감시하고, 주도하는 일]을 하는 약사라는 직업이 소통할 수 있을까.

어렵다. 예전에는 정말 몰라서, 정말 정보가 적어서 엉뚱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다수였다면 이제는 엄청난 정보 속에서, 개인은 나름의 수많은 정보를 찾아 위험과 이익을 저울질 하고 선택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약사의 소통 방식을 ‘선택’ 과 ‘사람’ 에 따라 다면체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파나쿠어 영상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건강한 사람 둘째, 암 치료를 하고 계신 분들 셋째, 유튜브 예시로 나온 시한부 말기암 환자분들. 이 세 그룹에 약사가 줄 수 있는 메시지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건강한 사람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호해야 한다. 2019년 현재, 파나쿠어는 결코 항암제가 아니고 동물약을 인간이 먹는 것은 (알 수 없는) 위험에 노출 될 가능성이 있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먹지 말라, 현혹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문가는 주어야 한다.

둘째, 혹여 암 수술을 앞두고 있거나, 다른 항암제를 드시고 있거나, 암 치료 과정에 있는 분들은 [전문가의 지시대로] 하는 것이 가장 확률이 높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전문가는 언제나 모든 치료 방법 중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을 중심으로 환자를 돕는 사람이다. 그러니 전문가의 방법대로 따르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진실로 모든 방법의 마지막에 서 계신 분들. 이 분들에게 우리는 과학적 소통 그 이상의 소통을 해야 한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닌, 그 분들의 주치의도 비슷한 고민을 할 거라 생각하며 우리는 그저 옳음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선택을 정상인들의 선택에 사용한 잣대로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 약사의 역할은 약물 치료 효과의 극대화 그리고 삶의 질 개선이다. 약물 치료 극대화의 순간을 넘긴 이후는 정신적 육체적 삶의 질 개선도 소통의 목적과 목표가 될 수 있다.

정보가 널린 세상, 정보의 폭탄 속에서, 우리는 소통해야 한다. 전문가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존재로서의 환자가 아닌, 다양한 정보를 통해 스스로 몸의 주인임을 생각하고 선택하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답이 하나인 소통이 아닌, 다면체 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사람 중심의 사회 속에서, 어려운 소통의 방법이 약사에게 과제로 주어졌다는 것을 파나쿠어 사건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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