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16개 요구안 기막힌다
- 데일리팜
- 2006-08-28 06: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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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싱가포르에서 융단폭격에 버금가는 전방위 압박을 가해왔음에도 복지부 장관은 그 요구안을 과도한 착시현상이라고 봤다. 그 말은 요구안이 아직 가랑비에 불과하니 신경 쓸 것이 별로 없다는 식의 해석으로 들린다. 이미 닥친 위기감도, 앞으로 닥칠 위기의 예감도 애써 피해가는 듯해 아연실색이다. 장관은 전혀 합의한 사항이 없다고도 말해 언젠가 반드시 맞을 장대비를 잊고 있는 모양이다. 이 정부는 의약품 분야 한·미 FTA 협상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임하고 있는지 내내 의문스럽다.
미국은 이번 압박협상에서 16개나 되는 요구사항을 내놨지만 우리 측은 고작 3개항을 내놓은데 불과하다.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역시 우리는 한참 밀리고 있다. 미국은 장단기 전략을 함축적으로 담아 우리의 심장부에 비수를 들이 댄 상황이지만 우리는 과녁조차 겨냥하지 못한 모양새다. 장관의 말 대로 백번 양보해 16개 요구사항중 대부분이 약가제도와 보험등재와 관련이 있는 것이고 특허나 지적재산권 문제는 일절 거론된 바 없다고 인정하겠다.
하지만 요구안의 이면에 담긴 내용을 생각한다면 그런 식의 안일한 답변은 있을 수 없다. 자구만 보면 요구안이 특허와 무관한 듯 보이지만 잘 따져 보면 특허의 범주에서 결정적 일격을 당했다고 봐야 한다. 요구사항의 핵심들을 보면 ‘아주 특별한’ 기준과 표준 그리고 절차들로 꽉 차 있다. 그것들이 대개 미국식 가이드라인일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미국이 바라보는 눈높이일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가 도저히 맞추기 어려운 그들의 수준이라면 곧 특허다.
요구사항중 서두에서 두 번이나 강조한 이른바 ‘혁신적 신약’에 대한 요구는 한국의 신약개발 수준이나 여력을 익히 알면서도 온전히 무시한 가운데 협박하는 행위다. 굳이 속되게 표현하면 첨단무기를 팔아먹는 식이다. 미국이 만든 무기의 품질기준으로 한국도 그런 무기를 만드는데 투자하고 그렇게 투자하는 자국 기업들을 우선시 하라는 요구다. 우리 수준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나아가 그런 미국의 무기에 미국기준의 인증마크를 한국이 붙여주고, 팔 가격도 높게 책정해 달라는 주문이니 유구무언이다.
보험등재 적정성, 급여결정을 위한 의약품 효과의 판단 기준이나 방법과 표준에 대한 요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가이드라인을 맞춘다는 것은 상황이 열악한 국산 제네릭의 퇴출명령과 같다. 나아가면 ‘한국산’에 대해서는 진입금지 명령 수준일 것이다. 품질이 우수하니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역시 특허의 범주다. 미국은 내내 그런 입장이다. 하지만 국가 간 특권은 일국의 주권이 개입되는 만큼 절대적이고 배타적 특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는 자세다.
미국은 약물 경제성 평가에 대한 기준 방법과 표준도 요구했다. 사실 미국의 약물 경제성 평가 노하우는 시판약물에 대해 상시 추적 평가하는 시스템이 정교하게 가동되고 있어 가히 세계 최고수준이다. 우리는 앞으로 미국의 그런 경제성 평가 노하우를 배워야 하고 적용해야 할 입장에 있기는 하다. 특히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포지티브 제에 경제성 평가는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선결작업이다. 결국 미국은 겉으로는 포지티브를 찬성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제품이 우선시되지 않는 포지티브는 반대한다는 깃발을 들고 나오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약가산정이나 급여기준에 대한 것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이에 대해 법 규정과 절차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결정기준 시기 체계에 있어서 독립적 검토’라는 말의 의미가 참으로 모호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문구대로만 보면 그것을 미국 것만 따로 해달라거나 특혜를 달라는 식이 아니고 뭔가. 법령이나 기준을 결정하는데 그 시기를 별도로 공지해 달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설사 그렇게 해준다고 해도 외자사는 미국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요구에 응할 때 다른 외자사들도 그런 요구를 할 것임은 자명하다. 보험약의 약가산정 기준이나 급여기준 결정을 업체에 따라, 국가에 따라 수십 개를 운영하는 나라가 있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물가상승에 따른 약가 재조정 요구도 우습다. 미국의 약가는 과연 물가상승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막대하게 투자한 연구·개발비와는 무관하게 물가상승분만 약가에 반영해 줘도 된다는 의미인지 명확한 답변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용량과 약가를 연계해 달라는 것도 상식이하다. 사용량 대비 높은 약가를 원하는 것이라면 물량적으로 장악한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완전한 독점을 인정해 달라는 것인데, 미국 내에서조차 독점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막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또한 배타적 특권과 독점의 요구는 자유무역의 근본원칙에 위배됨을 그들도 알 것이고, 그러한 패권의 폭력성을 알기에 분노한다.
미국의 요구에 비하면 우리의 요구는 정말 초라하다. GMP의 상호인정, 특허만료 복제약의 상호인정 등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 요구사항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눈치를 본 흔적과 방어에 진땀을 흘린 흔적이 배어 있다. 이러다가는 미국이 부분적으로 양보한 것 마저 그들에게 큰 명분이 된다. 의약품 분야가 스스로 다른 분야의 제물이 되면서도 다른 분야의 FTA 협상에서 흥정용으로까지 이용되는 치명타를 안겨주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장관은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장담했다. 그 '오차없음'이 우리는 국익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의 지침은 의약품 분야 협상에서 한국 대통령의 지침을 존중한다는 의미인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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