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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바이오 소부장 국산화…'좋아도 못 쓰는' 현실

  • 황병우 기자
  • 2026-05-15 06:00:36

[데일리팜=황병우 기자]바이오 소부장 국산화는 오래된 과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해외 공급망 의존의 취약성이 드러났고, 국내 바이오 생산 역량이 커질수록 소재·부품·장비 자립의 필요성도 함께 강조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는 구호와는 조금 다르다. 최근 한국바이오협회 소부장위원회에 참여한 기업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공통된 답답함이 있다.

국내 기업이 기술을 갖고 있어도 이미 해외 주요 기업이 장악한 시장을 뚫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술의 문제가 전부가 아니다. 바이오 생산 현장에서 소부장은 단순한 부품이나 소모품이 아니라 품질, 허가, 공정 안정성과 연결된 신뢰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국내 바이오 소부장 기업은 글로벌 기업 수준의 기술과 품질을 요구받으면서도, 가격은 국산이라는 이유로 더 낮춰야 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는 게 현장의 고민 중 하나다.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품질 시스템 구축, 장기 검증 데이터 확보가 필요한데, 시장 진입 단계에서는 오히려 낮은 가격 경쟁력을 먼저 요구받는 역설이다.

국내 CDMO 산업이 커지는 상황도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생산 규모가 커지면 국산 소부장에도 기회가 열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공정 현장은 훨씬 보수적이라는 평가다.

이미 해외 고객사와 협의된 공정, 글로벌 허가 대응 경험이 있는 소재, 장기간 사용해온 장비와 부품이 있다면 이를 국내 제품으로 바꾸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원·부자재 하나를 바꾸더라도 공정 검증, 품질 데이터, 경우에 따라 허가 변경 이슈까지 따라붙을 수 있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이미 세팅된 공정에 변수를 만들 이유가 크지 않다. 국내 기업 제품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입증하더라도 '굳이 바꿔야 할 이유'를 설득해야 하는 구조다.

기업 구매팀이 국산 소부장을 적용하고 싶어도 내부 품질부서, 생산부서, 규제 대응 부서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결국 국산 제품 채택은 단순 구매 결정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리스크 판단 문제로 넘어간다.

이 지점에서 바이오 소부장 육성 정책의 접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현장의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국산화 논의가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개발된 기술을 어느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누가 써볼 것인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술 개발 지원만으로는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증, 레퍼런스, 초기 적용 경험, 공정 전환 부담을 나눌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

특히 바이오 소부장은 일반 제조업의 국산화와 다르다. 제품 성능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생산 현장에 들어가기 어렵다. 연구용 시장에서 시작해 파일럿 공정, 비임상 또는 초기 임상용 생산, 이후 상업 생산 단계로 이어지는 적용 사다리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이 품질 데이터를 축적하고, 수요 기업은 과도한 부담 없이 제품을 시험해볼 수 있어야 한다.

정책 역시 단순히 과제를 선정하고 개발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넘어, 개발된 제품이 실제 생산 공정에서 검증될 수 있는 실증 인프라,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을 연결하는 공동 검증 프로그램, 초기 적용에 따른 리스크를 분담하는 제도적 장치까지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물론 현장 적용을 무리하게 강제할 수는 없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고, 글로벌 허가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영역이다.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애국심만으로 쓰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반대로 검증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구조라면 국내 소부장 기업은 영원히 글로벌 기업과 같은 레퍼런스를 쌓을 수 없다. 신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회를 주지 않고, 기회가 없다는 이유로 신뢰를 얻지 못하는 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국내 바이오 산업은 이미 글로벌 생산기지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생산시설의 규모가 커지는 것과 생산 생태계가 단단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공장 안에서 쓰이는 핵심 소재와 장비, 공정을 떠받치는 부품과 소모품이 해외 공급망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산업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바이오 소부장 국산화는 단순히 국산 제품을 더 많이 쓰자는 문제가 아니다. 국산화의 다음 단계는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쓰일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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