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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현금 자산에도 3조 유증…삼성로직스 '깜짝 증자' 배경은

  • 차지현 기자
  • 2026-08-29 06:00:54
  • 요약
  • 폴리펩타이드 인수에 2.7조 투입…차입 계획 한달 만에 유증으로 선회
  • 신주 4.9%로 희석 제한, 삼성물산·전자 참여 주목…금감원 심사도 변수
삼성바이오로직스 4공장 전경 (자료: 삼성바이오로직스)

[데일리팜=차지현 기자]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가 3조원대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나선다. 2022년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와 생산시설 확대를 위해 3조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지 4년 만이다. 회사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와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증설에 투입할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2조원대 현금성자산을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유상증자로 방향을 선회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신주 발행에 따른 주주가치 희석과 삼성물산·삼성전자의 청약 참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대규모 유상증자에 대한 금융당국 심사가 강화한 만큼 당국의 판단 역시 변수로 꼽힌다.

4년 만에 또다시 3조 유증…90% 폴리펩타이드 인수에 투입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8일 이사회를 열고 총 3조9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보통주 227만주를 새로 발행하는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이다. 예정 발행가는 주당 132만2000원으로 할인율 15%를 적용했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11월30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이번 유상증자 사유에 대해 "폴리펩타이드그룹(Polypeptide Group) 인수와 제2바이오캠퍼스 증설 등을 통해 지속 성장을 이어가기 위한 자본 조달"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조달액 중 90.2%인 2조7062억원을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에 투입한다. 사실상 이번 유상증자로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대금 대부분을 마련하는 셈이다.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폴리펩타이드그룹을 최대 14억6296만스위스프랑(2조7062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공개매수를 통해 최대 3301만6411주를 취득해 지분 100%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 개요 (자료: 삼성바이오로직스)

폴리펩타이드 그룹은 1996년 글로벌 제약사 페링의 펩타이드 생산사업부에서 분사한 CDMO 전문 기업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펩타이드 신약 후보 물질 생산 프로세스 개발 역량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를 통해 기존 항체의약품과 메신저리보핵산(mRNA), 항체약물접합체(ADC)에 이어 펩타이드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나머지 2948억원은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증설에 활용할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2바이오캠퍼스에 지난해 완공한 5공장에 이어 6~8공장을 순차적으로 건설해 항체의약품 생산능력을 총 138만5000L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로써 글로벌 CDMO 시장 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도적 지위를 공고히 한다는 목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건 2022년 이후 4년 만이다. 당시 회사는 총 500만9000주 신주를 발행해 3조2000억원을 조달했다. 이 가운데 1조2024억원을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 등 타법인 증권 취득에, 1조9984억원을 생산시설 확충에 투입했다. 대규모 성장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또 한 번 주주의 손을 빌린 것이다.

현금 2.2조·부채비율 51%…차입 대신 주주자금 택한 이유

시장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조원대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도 대규모 유상증자를 선택한 배경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당초 회사는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대금을 보유자금과 차입금으로 마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불과 한 달여 만에 3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로 방향을 선회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분기 말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을 합쳐 2조1886억원의 현금성 유동성을 보유했다. 이는 1분기 말 1조6204억원보다 35.1% 증가한 규모다. 지난해 말 1조4560억원과 비교하면 반년 만에 50.3% 늘었다. 당장 보유한 현금만으로 폴리펩타이드 인수대금의 80% 이상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풍부한 현금은 본업의 높은 수익성이 뒷받침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분기 연결 매출은 1조3209억원, 영업이익은 586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30.2%, 22.9% 증가했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2조5780억원, 영업이익은 1조1672억원에 달했다.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45.3%로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영업이익으로 남겼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반기 실적 (자료: 삼성바이오로직스)

차입 부담도 크지 않은 상황이다. 2분기 말 연결 기준 총부채는 4조2907억원, 자본총계는 8조3619억원으로 부채비율은 51.3%에 그쳤다. 차입금비율도 11.5%에 불과하다. 총차입금은 9653억원으로 현금성 유동성보다 1조2233억원 적어 순현금 상태다. 회사채 발행이나 금융권 차입으로 1조원을 추가 조달한다고 단순 가정해도 부채비율은 63.3% 수준에 그친다. 현금 여력과 낮은 부채비율을 감안하면 차입을 통한 자금 조달 여지가 충분한 상황에서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을 결정한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규모 성장투자 재원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면서 향후 추가 투자에 대응할 수 있는 재무적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부채 증가와 이자비용을 감수하는 대신 주주자금을 활용해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하반기 예정된 회사채 상환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오는 9월 1200억원, 10월 2000억원 등 총 3200억원 규모 회사채 만기를 앞뒀다.

반면 기존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이번 유상증자가 달갑지만은 않은 결정이다. 유상증자로 신주가 발행되면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는 만큼 기존 주주가 보유한 지분율이 낮아지고 주당 가치도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탄탄한 현금과 차입 여력을 갖췄음에도 대규모 유상증자에 재차 나선 만큼 주주 부담을 반복적으로 떠넘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희석률 4.9%로 낮췄지만…대주주 참여·금감원 심사 관건

결국 이번 유상증자의 관건은 대규모 자금 조달의 당위성과 주주가치 희석 우려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해소하느냐다. 회사가 현금과 차입 여력이 충분한 상황에서 다시 주주자금을 택했다는 점은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조달 자금이 실제 기업가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지, 대주주가 일반주주와 부담을 얼마나 나눌지도 시장의 평가 대상이다.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심사가 까다로워진 점도 부담 요인이다. 당국은 증자 규모와 자금 사용 계획의 구체성은 물론 차입·회사채 등 대체 조달 수단의 검토 여부, 투자 시기와 집행 가능성,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분위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3월 해외 생산거점 확대 등을 위해 3조6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지만 주주가치 희석과 자금조달 필요성 논란에 부딪혔다. 발표 직후 주가가 13%가량 급락했고 금융감독원은 투자 필요성과 자금 사용처, 주주와의 소통 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후 유상증자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축소하는 동시에 한화에너지 등이 1조3000억원 규모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조달 구조를 바꿨다. 일반주주가 부담하는 증자 규모를 36.1% 낮춘 셈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의 추가 정정 요구가 이어지면서 자금 사용 계획과 투자 필요성 등을 보완한 뒤 증자를 진행했다.

올해 한화솔루션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 3월 재무구조 개선과 차세대 태양광 투자를 위해 2조3976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했다. 조달액 중 1조4899억원을 채무 상환에 투입하고 나머지 9000억원을 태양광 설비 투자에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금감원 정정 요구와 주주 반발 등을 거치며 최종 발행 규모는 절반까지 축소됐다. 자금조달 목적이 분명하더라도 증자 필요성과 방식, 주주 부담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면 시장과 당국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얘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유상증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신종자본증권, 전환사채(CB), 제3자배정 유상증자 등 다른 자금조달 방안을 충분히 검토했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신종자본증권은 높은 금리와 대규모 조달의 현실적 제약이 있고 CB는 오버행과 장기간 지분가치 희석 우려가 있다"면서 "제3자배정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하는 방식인 만큼 주주가치 보호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주주가치 희석을 최소화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유상증자로 발행하는 신주는 227만주로 기존 발행주식의 4.9%에 해당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당초 기존 주식의 약 13%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하려 했던 것과 비교하면 희석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최근 5년간 국내 상장사가 실시한 1조원 이상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유상증자의 평균 증자비율 29.9%와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신주 발행에 따른 주주가치 희석은 최대한 제한하면서도 대규모 투자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자 규모를 책정했다는 게 삼성바이오로직스 측 설명이다.

소액주주 비중이 높지 않아 최대주주 측이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는 점도 차이가 있다. 6월 말 기준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1%, 삼성전자는 31.2%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 특별계정과 임원 지분까지 합친 최대주주·특수관계인 지분율은 74.3%다.

현재 지분율을 유지하고 삼성물산과 삼성전자가 배정 물량을 전량 청약한다고 가정하면 두 회사가 부담할 금액은 1조8000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이 1조300억원, 삼성전자가 7500억원을 부담하는 구조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는 2022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에서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전례가 있다. 당시 삼성물산은 190만4239주에 1조2168억원, 삼성전자는 138만477주에 8821억원을 각각 청약했다.

다만 회사 측 설명에도 시장 반응은 냉랭했다. 유상증자 발표 당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6.8% 내린 148만6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27일 73조7878억원에서 28일 68조7884억원으로 줄어 하루 만에 약 5조원이 증발했다. 풍부한 현금과 낮은 부채비율에도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택하면서 주주가치 희석 우려가 부각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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