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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 '코로나 블루' 확산..."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요"

  • 코로나 확산 이후 재택근무 활성화·대면활동 기피
  • 영업·생산·인사 등 모든 실무진들 업무 무력감·우울감 호소

[데일리팜=천승현 기자·안경진 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 상륙한지 50일가량 지났다. 지난달 19일 31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20일 만에 코로나19는 전국을 덮쳤다. 지난 8일 오후 4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7313명에 달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자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삶의 패턴이 바뀌면서 우울감이나 무기력함을 느끼는 증상을 뜻한다.

코로나19의 확산은 제약업계 종사자들의 삶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하루 동선은 집과 회사로 간결해졌다.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업무 특성상 영업사원들은 추가 감염을 이유로 일찌감치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내근직 직원들도 대부분 집에서 근무하거나 시급한 업무가 있을 때만 회사에 들어간다.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이나 대화가 크게 줄었다. 거래처와의 미팅도 가급적 회피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이후 크고 작은 변화를 겪고 있는 제약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영업 11년차 김 과장 "집에서 근무하지만 가시방석"

국내 제약사 영업업무를 맡는 김 과장은 요즘 하루 일과를 집에서 시작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선 지난달 26일부터 영업사원 전원 재택근무 방침이 정해졌다.

재택근무를 시작할 땐 혼잡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길을 나서지 않는다는 편안함이 있었지만 요즘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실적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거래처 방문을 소홀히 하는 동안 처방이 떨어질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렇다고 선뜻 의료기관을 방문하기엔 겁이 난다.

자칫 병의원을 돌아다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방문한 요양기관은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한다. 너무나 큰 민폐다. 영업사원 관리를 제대로 안했다며 회사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는 온라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영업을 유도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공식적으로는 재택근무지만 거래처 관리를 꼼꼼히 하라는 상사의 지시에 슬며시 의료기관을 방문했다. 평소보다 환자가 부쩍 줄어 원장님을 만나기는 수월했지만 “요즘 같은 때 병원에 오는 건 자제해달라”는 원장님의 핀잔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약국 영업베테랑 조 부장 "마스크 인파에 방문도 엄두안나"

조 부장은 약국 영업만 18년을 담당한 베테랑 '영업맨'이다. 요즘처럼 영업이 힘든 때는 없었던 것 같다. 조 부장은 병의원보다는 상대적으로 감염 위험이 낮다는 판단에 필요할 때엔 약국을 방문하고 있다. 약국 영업 특성상 영업사원이 직접 방문해 처리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국마다 마스크 판매로 혼란을 겪고 있어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불가능하다. 한동안 마스크를 구해달라는 약사들의 요청에 적잖은 피로감을 겪기도 했다. 지난달 말에는 약국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약사들의 요청에 한달치 약품 구입비 결제를 받지 못하면서 수금 목표를 채우지도 못했다.

최근에는 거래처 근무 약사들의 극심한 스트레스 호소에 영업업무 관련 말을 건네기도 눈치가 보인다. 약사들은 건물 의료기관에서 내려오는 처방전이 부쩍 줄다고 한숨을 내쉰다. 마스크를 구매하려고 새벽부터 줄을 서는 소비자들을 관리해야 하는 데다 공적마스크 판매 절차마저 까다로와졌다며 신경이 더욱 날카로와졌다.

얼마 전 동일 건물 병원에 처방을 시작한 신제품의 처방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문의해보고 싶지만 마스크 구매 인파로 길게 늘어선 줄에 약국 문 턱을 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공장 근무자들 "확진받으면 회사에 막대한 손실" 전전긍긍

의약품 공장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안 대리는 요즘 출퇴근 자체가 고역이다. 안 대리를 비롯한 공장 근무자들에게 재택근무는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공장 근무자들 중 확진자가 발생하면 즉각 가동을 중단하고 방역을 하면서 한동안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 확진자 1명이 회사에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안 대리는 직원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올까봐 조마조마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근 한 제약사 연구소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긴장감은 더욱 커졌다. 공장에서는 직원들의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수시로 체크한다. 출근하면 전날 누구를 만났는지 물어보는 상사도 있다. 주요 동선마다 적외선 온도계를 설치하고 수시로 공장 직원들의 체온을 잰다.

코로나19 확진받으면 가만안두겠다는 상사의 엄포에 동료들간의 접촉도 꺼리게 된다. 밖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점심을 먹고 오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자주 찾았던 회사 인근 김치찌개 식당이 당분간 점심 장사를 중단한다는 소식마저도 슬프게 느껴진다.

▶허가팀 서 차장 "생동시험·해외실사 차질...할일이 태산인데"

국내제약사 허가업무를 담당하는 서 차장은 요즘 골머리를 썩고 있다. 제네릭 생동성시험을 의뢰한 의료기관이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갑작스럽게 2주동안 대면업무를 일시 중단한다고 통보해오면서 비상이 걸렸다.

서 차장은 오는 7월 약가제도 개편안 시행에 대비해 생동성시험 일정을 빼곡하게 잡아놨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생동성시험과 같은 업무공백이 길어질까 전전긍긍이다.

자칫 제네릭 개발과 같은 사업전략에 차질이 생길 뿐 아니라, 기존에 판매 중인 제네릭제품의 약가를 보존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밤잠이 오질 않는다. 복지부나 식약처에 이 같은 상황을 문의하고 싶지만, 정부부처들도 마스크 수급 등 코로나19 대책마련으로 분주하다보니 연락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의약품 허가절차에도 지장이 있다. 오랫동안 공들여 해외 거래처를 발굴해 국내 판권을 따냈지만 식약처가 해외실사를 주저하는 데다 최근에는 원 개발국에서 현지 방문을 꺼려하면서 허가절차가 멈췄다.

설상가상 내근직마저 재택근무를 하라는 지령이 떨어지면서 거래처나 부서원들과 만남도 줄어들 처지라 답답할 따름이다.

▶인사과 정 팀장 "일손 부족한데 면접도 게릴라전"

신생 바이오기업 인사과 정 팀장은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업무 공백이 커질 수 있다는 생각에 선제적으로 순환근무제를 도입하면서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해외 출장을 다녀온 직원 중 한명이 감기 증상을 보이면서 전 부서가 발칵 뒤집혔다.

부랴부랴 해당 부서 직원들을 자가격리 조치하고 보니 회사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다. 직원수 자체가 많지 않은 터라 남은 직원들만으로는 정상적인 업무진행이 어렵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아쉬운대로 화상회의를 시도해봤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원활한 진행이 어려웠다.

사태가 악화한 건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선 지난달 26일부터다. 경력자 채용 면접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긴급 회의에서 면접일정을 일주일 뒤로 미루자는 결정이 내려지면서 지원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해야 했는데, 아직도 사태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규모가 큰 회사라면 채용일정을 연기하겠지만, 실무부서에서는 하루가 급하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하는 수 없이 화상면접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는데, 막상 면접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니 신경쓰이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면접을 보는 당사자도 아닌데 돌발상황이 생기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다국적사 이 PM "차라리 회사 나갈 때가 좋았죠"

다국적 제약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 대리는 재택근무가 한 달가까이 이어지면서 우울감이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회의를 유선이나 SNS를 통해 진행하다보니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 춘계학술대회를 비롯해 각종 학회활동이나 세미나 모두 취소돼 정작 마케팅 활동을 펼칠 창구가 막혔다.

공동 판매를 진행 중인 국내사와의 정기적인 마케팅 회의도 무기한 미뤄졌다. 1분기가 끝나가는데 올해 초 야심차게 세웠던 의약사 대상 프로모션 전략을 실행해보지도 못했다.

집에서 보안프로그램이 설치된 노트북으로 업무를 하는데, 왠지 회사로부터 감시당한다는 느낌에 찜찜하다. 회사에 출근할 때보다 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집에서 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상사의 의심에 허탈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커피 한잔 사마시러 집앞 까페에 나서기도 망설여질 정도다. 차라리 지옥철을 타고 체온을 재서 보고할 때가 나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예년에 비해 실적이 부진한 탓일까. 본부장의 잔소리도 많이 늘었다. 카카오톡 단체방에선 업무 지적과 지시가 끊이질 않는다. “차라리 회사에 나가서 잔소리도 직접 듣는 게 낫죠.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몰랐네요.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되고 회사 동료들과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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