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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선] 명분 없는 정부의 약 배송 확대 정책

  • 강신국 기자
  • 2026-08-24 06:00:42
  • 요약

[데일리팜=강신국 기자] 오는 12월 24일이면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골자로 한 개정 의료법이 본격 시행된다. 국회가 오랜 논의와 사회적 타협 끝에 마련한 법안의 핵심은 '제한적 재택수령'이다. 

거동이 불편한 장기요양 수급자와 등록 장애인, 지리적 한계에 부딪힌 섬·벽지 주민, 감염병 확진자 및 희귀질환자 등 정작 도움이 절실한 의료취약계층을 위해 약 배송의 길을 열어두되, 일반 환자는 약국을 직접 방문해 대면 복약지도를 받는 안전장치를 뒀다.

그런데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인 지금, 정부가 뜬금없이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로 약 배송을 전면 확대하겠다며 판을 흔들고 나섰다. 보건복지부, 중소벤처기업부, 국무조정실이 합동으로 내놓은 이번 발표는 정책의 연속성과 신뢰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명분 없는 급발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떤 제도든 입법 후 시행 과정을 거치며 현장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데이터와 평가를 토대로 보완하는 것이 상식적인 국정 운영의 순서다. 12월에 열릴 제한적 약 배송조차 실제로 가동해보지 않았다. 의약품 변질 위험, 오배송 및 분실 사고, 서면 복약지도의 한계 등 현장에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단 하나의 평가 지표도 축적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편의와 접근성'이라는 포장지를 앞세워 전면 확대를 위한 추가 법 개정부터 외치는 것은 명백한 본말전도다.

시점과 배경을 들여다보면 의구심은 더욱 짙어진다. 발표가 나온 날은 비대면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겸업을 제한하는 '닥터나우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였다. 플랫폼 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전면 약 배송' 카드를 꺼내 든 주체가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복지부가 아니라 규제 완화와 스타트업 육성을 외치는 국무조정실과 중기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건의료 체계의 근간인 대면 원칙과 복약지도의 안전성보다, 특정 플랫폼 산업계의 이해관계와 '혁신'이라는 허울 좋은 구호가 정책 우선순위를 가로챈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마저 이러한 속도전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은 이번 정책 결정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졌는지를 방증한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고위 관계자도 "중기부 등 산업 부처를 축으로 비대면진료 처방약 배송을 대폭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대외 공식화했지만, 이는 당의 입장과 차이가 크다"면서 "비대면진료는 아직 본사업, 정식 제도화가 시행도 되지 않았다. 지금 처방약 전면 허용을 논의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점은 주목해 봐야 한다. 

의약품은 일반 공산품이나 배달 음식이 아니다. 잘못 투약되거나 오남용될 경우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공공재다. 플랫폼이 진료 중개부터 처방전 전송, 조제약 배송까지 전 과정을 장악하게 될 때 초래될 특정 대형약국 쏠림과 동네 단골약국의 붕괴는 결국 국민 건강권 침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민관협의체를 통해 소통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전면 확대'라는 결론을 정해두고 추진하는 협의체에 약사사회가 등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시작도 안 한 법을 흔들며 산업 논리에 편승하는 정책에는 명분이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설익은 '전면 확대' 드라이브를 멈추고 12월로 예정된 취약계층 중심의 제한적 재택수령 제도가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세부 가이드라인 정비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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