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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들이 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죠""1주일에 한 번이지만 노인분들과 만나 공부하고 대화하는 것도 큰 기쁨이지요."서울 대림동에서 늘기쁜약국에서 일하는 안영철 약사(53·조선대)는 영등포구청에서 운영하는 대림노인대학장에 임명돼 무보수로 지역 노인들과 생활하고 있다.약사로는 유일한 노인대학장이라는 안 약사는 강의와 노인대학 관리에 여념이 없었다."우리사회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지요. 그러나 사회 기반 시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노인대학의 의미는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지난 20년간 졸업생만 수 천명에 이른다는 대림노인대학은 평생교육과 노인들의 친목의 장으로 발전했다.안 약사는 학장 일도 하고 강의도 한다. 과목은 경영학과 보건위생 등이다.특히 안 약사는 지난 2009년 숭실대 경영대학원에서 '노인요양시설 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실증연구'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바 있다. 노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많다는 것일까?"대림노인대학의 교훈은 '노년을 즐겁게, 노년을 아름답게, 노년을 건강하게 노년을 보람있게'에요. 이 교훈에 따라 교육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학습내용은 사회교양, 보건위생, 문화예술, 한문교육 등이다.그는 노인들을 위해 다양한 현장체험학습도 마련한다. 내달 12일에는 망향동산에 야외학습을 진행한다.보고 싶은 것도 많은 노인들에게 야외학습 만큼 좋은 반응을 얻는 수업도 없다고 한다.이미 청와대, 국회, 경복궁, 남한산성, 수원화성 등을 다녀왔다. 안 약사 외에 강사들이 사비를 털어 야외학습을 가는 경우도 있다."약사들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은 많아요. 노인대학도 그 중에 하나지요. 노인대학에서 즐겁고, 아름답고 건강하게 보내시는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합니다."약국 업무와 동료약사들의 고충처리 상담으로 바쁜 안 약사는 5월에 있을 망향동산 현장학습 준비로 그 누구보다 즐겁다.2011-04-28 06:36:29강신국 -
"무언가 해보려 애쓰는 회사가 먼저…"그의 꿈을 내비쳤을 때 약업계 사람들은 웃었다.그가 베트남에 공장을 짓는다고 할 때도, 미국에 공장을 세운다고 했을 때도 또 웃었다. 전문신문 기자들 조차 "그거 진짜냐"며 반신반의했다.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국내에서 내로라 하던 매출 상위 제약회사들도 국내 시장에 몰두하며 외국 시장을 입에 올리지 않던 시절이니 말이다.그야말로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고, 이제 국내 제약기업들에게 '글로벌 진출'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적 과제로 다가왔다.한국유나이티드제약 강덕영 사장(64)은 일찌감치 글로벌 경영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목표한 꿈의 10%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강 사장은 "글로벌진출은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안고 있는 태생적 목표일 수 밖에 없다"며 꿈을 실현하는데 매진하겠다고 재차 강조한다.'한국유나이티드제약'. 바로 이 회사명부터 업계는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독특하다기보다 "뭐야, 다국적 회사도 아니면서…"라는 일종의 비아냥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다국적제약회사인지 구분가지 않는 회사명이 흔하지만 1987년 창립 당시 제약사 이름은 한결같이 'ㅇㅇ제약'아니면 'ㅇㅇ약품' 일색이었다.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라는 사명에는 그 만한 사연이 있다.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를 나와 국내외 제약회사 2곳에서 영업사원으로 이름을 날리던 강 사장은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의약품 수입상인 연합약품을 경영하다가 제약회사를 세웠다.강덕영 사장은 제약업계에서 존재감이 채 형성되기 전부터 수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한국인의 다국적제약회사를 주창했다. 오늘 날 업계 공통 화두가 글로벌 진출이라는 점을 보면 그의 생각은 늘 업계보다 한발 앞에 있었던 셈이다.그의 세계화 비전을 비웃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진출이 화두" 무역학과를 나온데다 연합연품을 경영하며 외국을 다니다보니 바깥 세상에 의약품을 팔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차렸는데, 외국 바이어에게 연합약품을 설명하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그는 복지부(당시 보사부)를 찾아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라는 사명을 승인해 달라 사정했다. 그 때 복지부 관계자는 '외자 회사와 혼돈될 수 있다'며 거절했었다."수출 좀 하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연합약품으론 힘이드니 승인해 달라고 졸랐죠. 그래서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라는 사명을 쓰게 된겁니다. 사실 유나이티드라는 말은 연합이라는 말을 영어 단어로 그대로 옮긴 거였죠. 외국 바이어들에게 이미 그렇게 설명하고 다녔으니까요."'역발상'에 능한 그는 여기서 한술 더떴다. '한국인의 다국적제약회사'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라디오 광고를 한 것이다. 회사 규모보다 큰 뜻을 밝히자 또 사람들은 수근댔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은 외국 브랜드를 가지고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한국시장에 국한된 계약으로 들여왔으니 외국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죠. 저는 외국 브랜드 안가지고, 라이센스 인하지 않고 우리 브랜드를 갖고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네릭일 수 밖엔 없었지만 말입니다."그는 외국 브랜드 판매를 전세집 사는것에 비유한다. "라이센스 인을 해서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면 달콤하지만 이건 전세 개념이에요. 집주인은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을 높여주든지 아니면 방을 빼라고 합니다. 그러면 세입자는 어쩝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우리회사 품목 중에 라이센스 인을 한 도입 브랜드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건 저의 경영철학입니다. 하지만 허가권을 들여다 국내서 개발하는데는 관심이 있습니다. 임상시험 등에 참여함으로써 아시아 판권을 확보하는 것은 요즘 환경에서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도입신약에 대해 그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외국서 라이센스 인하거나 코마케팅해서 마진 10% 받는 것은 안하려고 합니다. 이게 소위 말하는 제약도매 아닙니까? 우리는 외국에 나가서 라이센스 아웃을 하려합니다."그렇다면 한국인 다국적 제약회사라는 꿈은 어느 정도 실현된 것일까."내 생각의 10%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베트남, 미국. 이집트에 지사를 내고 공장을 한지도 꽤 오래지났는데 솔직히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36개국에 170억원 정도 수출하고 있는데 큰 마진은 못봐도 그래도 좀 낫습니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국내 후발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시장을 많이 빼앗겼어요. 뜻은 좋았지만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간다면 외국부문에서 1조원을 바라봅니다."제네릭의 한계는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외국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아프리카부터 중동, 중남미, 아시아 지역에 약 팔겠다고 뛰어다니면서 현장에서 느낀 것은 이제 외국시장에서 제네릭으론 안된다는 것입니다. 경쟁이 치열해 남는게 없어요. 개량신약 정도는 돼야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 매출액대비 연구개발비가 12%를 넘었어요. 3년전부터 개량신약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결과물이 나오면 기존 외국에 투자한 조직이 힘을 쓸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콜럼버스에도 승선했으니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확신합니다."실제 이 회사는 개량신약 클란자 서방정을 출시한데 이어 하루 1정을 복용하는 실로스타졸 서방정과 항암제 도세탁셀, 클로피도그렐과 아스피린 복합제 등 개량신약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신약-제네릭 보험약값 더 인하되면 제약산업 붕괴" 그는 정부가 보험약가 인하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우려했다."보도를 통해 알려진대로 신약과 제네릭 가격이 50%까지 인하된다면 국내 제약산업은 붕괴할 겁니다. 절대 엄살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나라 제네릭 가격이 높다지만 미국에 가보면 쓸만한 제네릭 가격은 우리보다 200~300%까지 높습니다. 조사한 내용이 있어요. 절대 우리나라 제네릭 가격이 높은 게 아닙니다."'지독한 경쟁을 유발시키면 경쟁력 있는 누군가 살아남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부의 구상같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정부가 살리고 싶은 회사가 먼저 다칠 겁니다. 무언가 해보겠다고 연구 개발하고 외국 진출을 모색하는 상위 제약회사들이 먼저 어려움을 겪는 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연구개발 안하고 그냥 팔면 더 오래 버틸수 있을 거에요. 조그만 회사일수록 생명력이 긴 셈이지요. 역설적이만 그렇습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 째로 제약산업이 발달했던 필리핀이 지금 어떻게 됐지요? 당국은 산업적 관점도 제발 살펴줘야 합니다."유나이티드는 어떨까. "위기라고 봐야 합니다. 허리띠 졸라매지 않으면 태풍에 날아가게 생긴 겁니다. 보험약가가 인하된다고 인건비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1995년 매출 50억원에서 작년 1360억원으로 덩치가 커졌지만 연구개발하고 외국시장에서 활동하려면 더 성장해야 합니다."그러면서 약사의 미래도 걱정했다. "필리핀에서 약사를 쓰면 300불 정도 줍니다. 한해 2000명 이상 약사가 나오는데 일할 곳이 없잖아요. 내수 제약사가 없으니 관련 산업이 다같이 허약해져 일할 곳이 없는 겁니다."그는 약가가 깎이면 해외수출이고 연구개발에 투자할 생각을 못하게 된다며 "똑같은 1원을 써도 다국적 제약회사의 1원에 밀릴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시장형 실거래가제도가 만들고 있습니다. 극단적 사례지만 이 제도는 국내 제약산업에는 치명적"이라고 언급했다.그는 "국내 10대 제약회사들의 라이센스 인 품목 비중이 60%를 넘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저마진 구조에서 약가가 내려간다고 품목 원소유자가 이를 보전해 줄리 만무하다"고 강조했다. 결국은 자기 제품이 많아야하는데 그러려면 투자가 가능한 정도의 약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정부 관계자들이 별로 경청하지 않는 '수 많은 강 사장의 이야기'는 답답했다. 건보재정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제네릭 약가가 높다는 이 간단 명료한 말을 당해낼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회사 설립 초창기엔 돈을 벌고 싶었다…지금은 좀 다르다""솔직히 회사 설립 초창기에는 돈을 번다는 것이 일의 의미였지만, 요즘들어서는 임직원과 주주와 사회가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을 일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사회 공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지금까지 3권의 저서를 낸 그는 2002년 '사랑하지 않으면 떠나라'는 책이 중국 하얼빈 방송국에서 오랫동안 낭독된 것을 계기로 조선족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어쩌다보니 연이 닿았고, 조금씩 지원을 하다보니 규모가 커진 형태가 됐습니다. 조선족 어린이 문화축제를 열게되고, 조선족 어린이 방송 합창단까지 지원하게 됐어요. 중국 등에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을 발굴해 장학금 등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일이커지면서 2009년 유나이티드 문화재단을 세웠습니다."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창사 사반세기 만에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아시아지역 200대 기업에 선정(2009)되고, 수출 부문을 비롯해 기업과 CEO에게 주는 많은 상을 받았다.2011-04-27 06:49:55조광연 -
"어린이 건강 위해 기부천사 됐어요"요즘 기업의 뜻 깊은 행사를 거창하게 기념하는 대신 봉사활동이나 기부 등을 통해 사회환원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들이 모범사례로 회자되고 있다.이 가운데 최근 일동제약 임직원 600여명이 뜻을 모아 어린이재단에 성금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이번 기부는 일동제약이 창립 70돌을 기념해 대내외 행사를 조촐하게 개최하는 대신 나눔의 봉사를 실천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이어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성금 모금에 참여했던 전국 각지의 직원들을 대표해 얼마 전 어린이재단에 기부금을 전달한 고객지원팀 안정혁 주임(33)은 "직원들이 함께한 기부에 혼자 인터뷰를 하게 돼 쑥스럽다"며 마냥 멋쩍어 한다."창립 70주년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뜻 깊은 일이 뭘까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마케팅 스텝부서 등 직원들과 함께 '성금이 가장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죠."십시일반 직원들이 모은 성금은 자그마치 1000만원이다. 이 금액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안정혁 주임의 그 다음 고민이 이어졌다."때마침 어린이재단의 '몸튼튼 마음튼튼 프로그램'이 눈에 띄더군요. 제약사이니만큼 건강을 우선하는 기업철학에 부합해 기부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세 살배기 아들 한 명이 있는 안 주 임은 이번 성금이 소외계층 아동들의 치료비에 사용될 것이니만큼 기부금 전달식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단다."치료비료는 적은 금액일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액수를 떠나 소외계층의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데 보탬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런 의미에서 성금 모금에 흔쾌히 참여해 준 기부 직원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라는 것이 안 주임의 말이다.안 주임은 이 외에도 회사에서 부서별로 순서를 정해 진행하는 봉사활동에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참석하는 '열혈 봉사자' 중 한 명이다."자원봉사와 캠페인 등 사내에서 릴레이식으로 공익활동을 하고 있어요. 일상에서 펼쳐지는 활동이다보니 어쩌다가 개인적인 약속과 겹쳐질 때도 있는 데, 그럴 때면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달려간답니다."봉사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안 주임은 "앞으로도 70돌 기념 나눔행사가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계속 동참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2011-04-25 06:43:00김정주 -
"세 쌍둥이 아빠된 기쁨 아시나요"김성대 대리 가족'0.001%.' 세 쌍둥이 이상을 자연 임신할 확률이다.쌍둥이는 흔히 보지만 세 쌍둥이 이상은 산부인과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다.지난해 동아제약에도 세 쌍둥이를 출산하는 경사가 있었다. 개발기획팀 김성대 대리(32) 가족이 그 주인공.2kg도 못 되게 작고 여렸던 은결, 은률, 은찬 세 형제가 지난해 말 세상과 만난지 벌써 백일이 훌쩍 지났다."퇴근하면 하루 종일 힘들었을 아내를 대신해 제가 아이들을 돌봐요. 아직까지는 제 때 먹이고 제 때 기저귀만 갈아줘도 막 보채거나 울지 않으니까 수월하죠. 지난주부터 밤낮 구분도 생겨 재우면 한번도 안 깨고 아침까지 자더라고요. 그래서 엄마도 저도 컨디션이 한결 좋아졌어요."밤낮이 바뀐 아이를 밤새 안고 달래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밤낮을 가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알 것이다.하지만 그 보다 더 흐뭇한 것은 작게 태어난 아이들이 개월 수에 맞게 점점 통통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왼쪽부터 은률, 은결, 은찬“첫째 은결이는 특별히 아픈 곳 없이 한 달 정도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퇴원을 했고 은률이랑 은찬이는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 있어 조금 더 있다 집으로 왔어요. 인큐베이터에도 오래 있었고 잘 먹지 못해서 개월 수보다 작은 편이라 걱정했는데 지금 첫째는 8kg의 우량아가 됐고 두 아이도 수유량도 늘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너무 예뻐요.”일란성 세 쌍둥이라 구분이 안될 만큼 얼굴이 많이 닮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본 아가들은 조금씩 얼굴이 다르다. 하지만, 꼭 닮은 부리부리한 눈, 오똑한 코는 가히 '미남 삼형제'라는 칭호가 어울릴 정도다."보통 세 명을 다 수유하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려요. 그래도 아이들이 순해서 배만 부르면 잘 노니까 다행이죠. 저희 큰아이도 순한 편이었는데 세쌍둥이가 더 순한 거 같아요. 사실 아이들이 보채면 혼자 셋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데 주위에서도 복이라고 하시죠."김 대리 부부는 세 쌍둥이 위에 큰 아들 한결이를 두고 있다. 동생이 태어나면 보통 첫째가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데 한결이는 오히려 동생들을 좋아하고 예뻐한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는 혹시나 한결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김대리 부인인 민경씨는 "일하고 와서 아이들을 보려면 자기도 힘들 텐데 내색 없이 너무 잘해주고 주말에는 어디든 나가라고 제 등을 막 떠민다"며 "남편의 배려 덕분에 매일 씩씩하고 즐겁게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남편을 칭찬했다. '서로 배려하라.' 결혼식 주례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지만 살면서 가장 지키지 못하는 말이기도 하다. 언제나 서로를 배려하며 걱정, 근심도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김 대리 부부에게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레시피를 볼 수 있었다."아내가 저와 스물다섯에 결혼해 이제 서른인데 벌써 네 아이의 엄마에요. 한창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누릴 것도 많은 나이인데 다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죠. 하지만, 둘 다 네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사명이라 생각하니까 같이 아이들 잘 키워냈으면 좋겠어요. 민경아!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해."2011-04-21 06:44:00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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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9시 뉴스에도 나온 사람입니다"제약업계서 떠도는 우스갯소리에 빗댄다면, 그는 '직업이 사장'인 남자다.햇수로 16년째 대표이사 사장이다. 어떻게 산을 가꾸고, 산에서 나는 여러 물자들을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임학(林學)과 출신이라 그런지 그는 이상적인 직장을 "좋은 숲을 가꾸는 일"이라고 정리한다. '좋은 숲에 새들이 날아든다'는 비유까지 이어지지 않았지만, 밖으로는 산소를 풍부하게 배출하고 안으로는 안락하고 넉넉한 쉼터를 제공하는 기업을 꿈꾸는 듯 했다.1996년 9월, 한국오츠카제약 엄대식 사장(49)은 각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에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여섯 계단을 훌쩍 뛰어 넘어 사장에 선임됐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에선 파격이었다. "(겸연쩍은 얼굴로) 그 때 텔레비전 9시 뉴스에도 나왔어요. 물론 일간 신문에도 죄다 나왔지요."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그는 이해 8월 임시주총에서 사장에 발탁됐다. 입사 10년 만이었었다. 그의 유머처럼 '오씨(오츠카제약의 오너인 오츠카 아키히꼬 회장과 친족 관계에 있지 않다는 의미)' 성을 갖지도 않았는데 파격적인 승진을 한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터이다."일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늦게까지, 도전적으로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PM으로 근무할 때 금요일 지방 제품 설명회를 마치고 토요일에 귀사하면 사무실에서 자장면 시켜 먹으며 이것저것 일을 했어요. 그러다 어둑어둑 한 밤에 회사를 나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고요. 일본 경영진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함께 주변 동료들과 관계도 리더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엄대식 사장은 햇수로 16년째 사장이다. 약업계의 말로 직업이 사장인 남자다.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한 후 여기저기 직장을 알아보던 그는 당시엔 임학과 출신을 뽑아주는 곳이 거의 없어 고민 했었다. "취직이 아주 어려웠어요. 그러던 차에 '전공 제한 없음'이라는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하게 됐죠. 그 땐 몇 개월만 하다 이직할 생각이었는데, 일본 연수를 보내준다고 해서 열심히 해보기로 했던 거죠. 처음에 프레탈을 맡았어요. 의사 분들을 많이 만나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매출도 커지고 점점 재미있어지더군요. 그래서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국내 제약업계 쪽으로는 16년째 대표이사 사장이면서도 은인자중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 그지만 일본 본사 해외책임자 회의 참석하면 그룹 회장과 지근거리에 앉는다. 그 만큼 한국오츠카가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솔직히 한국오츠카에 대한 평가는 그룹 안에서 긍정적입니다. 뭐랄까 발언권도 더 있다고 봐야겠죠."실제 그는 그룹 환영 만찬에서 부인(알토 색소폰)과 함께 배운 색소폰을 연주했고, 이에 맞춰 오츠카 아키히꼬 회장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사장직을 수행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저는 첫 번째가 사람이고, 두 번째가 제품이며, 세 번 째가 프로세스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평가 제도를 마련하니까 직원들이 더 열심히 일해 줬고, 그래서 믿고 맡기면서 회사가 계속 성장을 하게 된 겁니다. 아마 그게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긍정적 요소들을 발굴해내니 점점 더 많은 긍정적 요소들이 끌어당기는 시너지 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그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흔히 자신이 좋아하면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습성은 그에게도 있나보다. 열정과 창조와 소통을 강조한 책 '혼창통'과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보다'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작년 여름휴가를 앞두고 직원들에게 '왜 일하는가' 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직원들은 반겼을까. "반응을 살펴보니 '휴가전에 왜 이런 책을 나눠주느냐'는 이야기가 오고 가더군요.""일은 선물"이라고 믿는 그가 한국인 임직원들과 함께 키워가고 있는 한국오츠카제약은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외자 제약회사다. 외자 제약회사지만, 이 회사는 굳이 '국내 제약과 외자 제약'을 따로 구분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드는 장점 요소가 많다. 국내에 공장을 두고, 국내 기업으로부터 원료를 구매하며, 이렇게 생산한 의약품을 국내 판매는 물론 외국에 수출하고, 벌어들인 돈으로 법인세를 많이 내는 기업이다. 여기에다 신규로 채용해 회사가 키워낸 330여명의 고용까지 책임지는 기업이라면 국내 기업과 비교해도 사회적 역할에서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한국오츠카는 토착화된 외자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원료를 조달해 공장에서 만들고, 이를 수출하며, 법인세를 많이내는 기업이다.-오츠카는 한국적 정서가 강하다. 토착화된 외자기업 같은 느낌입니다."오츠카는 한국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생산부터 판매까지 다하려 했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많고 기술 수준이 믿고 맡길만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원료합성 공장을 만들었고, 그 원료를 일본과 미국에 수출합니다. 특히 1998년 미국 FDA GMP 사찰을 받았는데 한번의 지적도 없었어요. 완제품의 경우 한국오츠카가 생산해 아시아, 아랍지역에 판매됩니다."-제조원가율이 다른 제약회사에 비해 월등히 낮은 이유는."이건 영원한 과제입니다. 원가율이 좋은 것은 소품목을 집중 생산해 수출까지 함으로써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진 덕입니다. 예전에는 원료를 일본에서 들여왔지만 이제는 국내서 조달해 원가절감에 도움이 됐고, 자동화 전문화 첨단시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프레탈, 무코스타, 아빌리파이의 매출 비중이 아주 높은데 제품 사이클상 정점을 지나고 있습니다."세 품목은 시장서 넘버 원입니다. 프레탈과 무코스타는 2002년 특허가 만료돼 제네릭이 진입했지만 임상시험과 신규 데이터생성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고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빌리파이는 주요 우울증 적응증을 추가했습니다. 앞으로 항암제와 항결핵제를 출시할 예정입니다."-뚜렛증후군 적응증을 겨냥한 아빌리파이의 소아임상은 한국오츠카가 주도했습니다."그룹의 핵심 품목을 해외 브랜치가 임상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만큼 한국오츠카의 임상 개발능력을 인정했기에 가능한 겁니다. 국내에 뚜렷한 약물이 없는 상황에서 소아과 의사들이 '아빌리파이를 틱이나 뚜렛증후군에 써보니 효과가 좋았다'며 적응증 개발을 요청했어요. 이를 계기로 기초연구를 실시해 본사를 설득했어요. 본사 지원까지 받으며 임상시험을 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냈습니다."-오츠카는 특이하게도 수출이 많은 외자 제약입니다."작년 매출 1250억 중 250억원을 수출했으니 매출대비 수출 비중이 약 20% 쯤 되나요? 지금까지 수출한 금액을 합치면 2000억원은 되겠지요. 1998년에 1000만불, 2009년 2000만불 수출탑을 받았습니다. 이젠 그 다음 단계를 위해 노력합니다."-법인세를 많이 내는 외자 제약사가 바로 오츠카입니다. 한국정서를 가장 많이 흡수한 외자사라른 평가가 이래서 나옵니다."1998년에는 국내 법인세 많이낸 순서로 128번째였는데 요즘엔 좀 떨어졌습니다. 오츠카 본사는 브랜치가 독자적으로 이익을 내고, 그를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0년 법인세는 약 94억원 됩니다."-본사는 임차 건물에서 사는데 한국오츠카는 자가 건물을 매입했습니다."본사는 건물 매입에 보수적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사옥을 갖고 싶었어요. 좋은 숲에 좋은 새가 날아드는 법이니까요. 주인의식이 바로 이런데서 비롯된다고 봤고요. 본사에 가서 한국에서 100년도 넘게 일할 회사 아니냐, 아니 뿌리내릴 회사 아니냐며 건물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습니다. 대표 주소 하나를 안정적으로 갖는다는 것은 경제성은 물론 여러면에서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좋은 숲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공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1층에 카페가 있는데 커피한잔에 2000원입니다. 주변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직원들이 여기서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이 캄보디아 우물파기에 쓰이기 때문입니다. 직원중에 바리스타가 있고 좋은 원두를 써 맛이 괜찮습니다. 가실 때 한잔 하고 가세요."-한국오츠카에 일본 경영진이 몇명이나 근무하나요."2003년 재경파트에 한분 있었는데 이젠 아무도 없습니다."-신규채용을 많이 합니다."우리 회사에는 같이 커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의기투합도 잘되고, 소통도 매우 원활합니다. 이직률도 낮습니다. 그러니 신규 채용으로 사람을 기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일하기 좋은 회사로 선정돼 상도 받은만큼 앞으로 더 좋은 회사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임학이 제약업에 잘 조화가 되나요?"현재 직장에 있으면서 임학을 공부하기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이 달려있으면 사람들은 감나무라 하지만, 감과 잎이 떨어지고 나면 대부분 잘 모릅니다. 지금도 산에 가면 나무 이름 좀 압니다. 하하하. 임학이 비즈니스와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지만 감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사장님에게 일은 무엇입니까."선물입니다."2011-04-20 06:50:00조광연 -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더 의미 깊죠"독주보다 합주를 더 좋아하는 의대 교수가 있다. 가끔 피아노와 첼로 독주를 하지만 "솔로는 나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라고 칭한다.1989년 경희의대에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동호회가 만들어졌을 당시부터 함께 한 윤동환(재활의학과) 교수.그는 "음악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음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즐긴다는 생각을 하면 안되요. 퍼포먼스라는 것은 굉장히 예민한 작업이죠. 남을 배려하고 연주하면서 사회, 그리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배우는거라고 봅니다."특히 퍼포먼스를 한다는 입장에서 의사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윤 교수는 "의사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라며 "오케스트라 또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텍스트를 연주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차원에서 비슷하다"고 말한다.그도 어릴적은 남들 다하는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을 전공으로 삼아볼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릴적 누구나 한번 쯤 꿈꾸잖아요"라며 취미는 취미 생활로 둬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윤동환 교수그래도 악기를 놓은 순간은 없었다. 조금씩이라도 연주를 해왔다. "성숙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은 굉장히 고되고 정성스러운 작업"이라는 윤 교수.그는 "같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강조한다.동호회 창간부터 함께 한 윤 교수가 말하는 오케스트라 내 에피소드는 무엇일까. 한 참 고민하던 그는 "어떤 연주든 연주가 시작되고 첫 5분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귀띔했다."오케스트라 연주 첫 5분은 정말 불안정해요. 선·후배의 떨림이 저한테 까지 전해지죠. 연습때 아무리 잘했던 곡도 본격적인 공연 앞에서는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죠."하지만 5분이 지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믿음을 생성하면서 연습 과정에서 볼 수 없는 집중력이 발휘된다고 한다."순간이 지나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과정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며 "의사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여 연주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2011-04-18 06:40:00이혜경 -
"변호사 출신 그녀의 식약청 과장 도전기"지난 1월 실시된 식약청 과장급 인사를 두고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들렸다.직렬과 상관없는 인사가 바이오생약국의 주무과장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그동안 주무과장은 경험많은 약무직 서기관이 맡는 게 관례처럼 여겨지다보니 인사소식을 접한 약무직 공무원들의 충격은 그 어느때보다 컸다.이제 3개월이 넘은 초보 #바이오의약품정책과장 김유미 서기관(45)은 식약청에서는 이례적인 변호사 출신이다.식약청에는 3명의 변호사가 있지만, 김 서기관처럼 특정 과장에 임명된 케이스는 아직까지 없다.바이오의약품정책과장이 고도의 약학적 전문성을 요하는 자리기에 주위에서는 "잘 해낼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김 과장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다."바이오생약국 주무과장이 주로 경력 많으신 약무직 기술서기관 선배들이었고, 그에 비해 실무 경험이나 외부 네트워크, 약학적 전문성까지 모자라 걱정스러웠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직위란 충실히 달성해야 할 업무와 역할이 있는 것이지 직렬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그는 부족한 점이 있다면 전임자들에 비해 채워야 할 부분이 훨씬 많은 것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내며 주무과장 자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그러나 역시 쉬운자리는 아니었다. 최근 줄기세포치료제나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높은 관심은 김 과장을 한시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3개월 동안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쉰다."세포치료제나 바이오시밀러 같이 그동안 국내에 없던 의약품 출현이 임박해 있어 새로운 정책 수요가 급증하는 영역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김 과장이 식약청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16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홍신 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면서다.김 의원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피감기관인 복지부와 식약청을 식은땀나게 만들어 우수의원으로도 선정됐다. 그 과정에서 김 과장의 역할이 컸음은 물론이다.이후 김 과장은 사법시험에 도전해 3년 만에 합격의 기쁨을 맛봤고 변호사로서 새로운 길을 걸었다.그러던 중 2006년 여름 식약청에서 변호사 사무관을 특채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식을 듣자마자 그는 다른 변호사들이 해본적이 없는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은 열정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법제나 분쟁이슈를 하나하나 정리해 가는 보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들어오면 일이 많을 거라 각오했는데 정말 할 일이 끝이 없더군요"그는 4년간 식약청 법무와 규제개혁 총괄을 담당하면서 점차 업무에 익숙해갔다. 그때 경험이 현재 주무과장으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한편에서는 그가 언젠가는 식약청을 떠나 로펌에 자리잡을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러나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특수 직렬에 버금간다."만약 (법조계에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온다면 지금 식약청에서 만큼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가치있는 일인지 고민해 보겠습니다"김 과장에게 당장 중요한 것은 수요가 늘고 있는 바이오의약품 제도를 정궤도에 올리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제조시설 공동사용, 국하출인승인제도, 바이오시밀러 지원 등 보다 합리적인 정책개발에 매진할 계획이다. 김 과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중요한 것은 잘하는 것인데 갈 길이 정말 멀고도 멀다"며 재빨리 책상으로 돌아갔다.2011-04-14 06:35:10이탁순 -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차이는…"그를 9일 오전 세종문회회관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샀다. "조용한데로 올라 갑시다. 젊은 사람들 따라 몇 번 와 봤는데 4층이 조용합디다."봄 햇살은 눈부셨고, 싸늘하게 느껴지는 봄기운은 아릿했다. "그래 뭔 할 얘기가 있다는 거유. 내가 뭔 한일이 있다구."말쑥한 양복과 단정한 셔츠, 반짝이는 커프스 버튼은 기자가 업계에 몸 담은 후 대략 20년간 보아온 모습이었지만, 이날 따라 더 근사했다. 45년 동안 약업계 현장을 누비며 새긴 주름에 햇살이 내려 앉았다. 연륜과 신뢰감과 안정감이 흩어졌다.그는 은유적이다. 화두를 던지고, 먼 외곽으로부터 서서히 좁혀오며 스스로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지루한듯 시작돼 나중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고나 할까.최현식 고문은 그런 인물이다. 그는 지난 3월 말로 GSK 상임고문직을 물러났다. 대한중외제약(현 JW중외제약)을 통해 약업계에 입문한지 45년만이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중외제약 사장과 부회장을 거친 후 글로벌 기업인 GSK에서 8년정도 몸담았다가 은퇴했다. 직장인으로서 1모작과 2모작을 성공적으로 해냈다.제약업계의 영원한 멘토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어요""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평범한 안부인사는 "실업자가 과로사 한다고…정신없이 바쁩니다"라는 농으로 되돌아 왔다. "담배 피우슈?" "아예, 피긴 하지만 어르신 앞에서 어찌…"라고 하자 "그럼 같이 합시다"며 담배를 건넨다. "어쩐 담." 마음이 반반으로 갈라진다.풍상의 45년을 압축하고 싶었다. "45년간 직장 생활을 지탱한 힘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다.최 고문은 "기본"이라고 했고 그 '기본'은 바를 정(正)으로 귀결됐다. "난 기본을 알고,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인생철학이라고 해 둡시다." 그러면서 약사로 중외제약에 입사해 영업부를 지원했을 때 기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경험담을 소개했다.필연처럼, 우연처럼 약업계에 입문한 최현식 GSK 상임고문이 최근 은퇴했다. 약업계 인생 45년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으로는 부족했다."당시 중외는 5% 포도당 정맥 주사제를 판매했는데 종종 부작용 문제가 있었죠. 약 만드는 것은 정확했는데 문제는 두께가 다른 병과 재생해서쓰는 수액 주사 키트에 있었던 겁니다. 유통과정에서 병끼리 부딪쳐 약한 부분에 미세하게 금이갔고, 재생 과정에서 남아있던 오염이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약이라는게 뭡니까. 정확해야죠. 바로 바를 정(正)이에요. 유리병이나 키트가 다 정(正)해야죠. 이 때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내 직장 생활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죠."그러면서 그는 "이 시대의 뉘앙스로 정은 정직이에요, 조직으로 끌어들이면 CEO에게는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말이요, 기본에 충실하다보면 주변에 신뢰(trust)가 쌓입디다"라고 말했다.그는 보이지 않는 가치에 헌신하다보니 45년간 약업계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우리가 살아온 과거는 다시 말해 절대빈곤의 시대에는 가치판단 기준이 하드웨어였어요. 요즘에는 소프트웨어, 다른 말로 보이지 않는 가치도 주요한 판단기준이잖아요. 그 왜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나와 프리젠테이션하는 스티브 잡스가 보이지 않는 가치의 상징 아닐까요? 나도 기본에 충실하려 했으니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GSK 이동까지 45년을 현업에 남아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늘 일관됐던 것은 아닌가봐요. 중외에 있을 때 이종호 회장님에게 '좋은 차 타시는게 남보기도 좋습니다'고 했으니 말이죠. 허허."그의 말투는 느리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로는 달변이다. 달변의 창고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책 100권 읽은 사람 만나서 해결하는 스타일""난 책은 안봅니다." 의외다.'세상에서 책 한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거나 '저축하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은 당해내지 못한다'는 식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지천인데 책 읽기를 싫어한다고? 대표이사 사장도하고, 부회장도 역임했는데?"지식가치의 시대라지만 책을 안 읽어요. 내가 원체 활동적인 성격이라 책 못봐요. 대신 책 100권 읽은 전문가를 만나 술대접하고 차대접하면서 듣고 배웁니다. 이야기 안에 키 메시지가 다 들어있어요. 풀어야할 문제나, 난관에 부딪히면 전문가 몇 사람을 만납니다. 여기서 최대공약수를 뽑아내고, 벤치 마킹합니다. 그렇다고 책 읽는 것을 무가치하다고 하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내 방식이 그렇다는 겁니다."중외제약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 당시 모습. 그래서 일까. 그는 약업계 후배들에게 "일터가 뭐라고 생각하시우?"라고 즐겨 묻는다. 그리고는 예의 '현장론'을 설파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약업계의 '멘토'라는 칭호가 따라 붙는다."일터는 말이요, 문제가 있는 곳이에요. 사무실이 아니란 말이죠. 모든 문제가 그 현장에 있는거고, 그 현장에 해결책도 있어요."그가 강조하는 것 중에는 기브앤 테이크(Give&take)도 있다. "인간은 세상에 나면서부터 사회 생활을 하는 존재잖아요. 사회 생활의 근간은 뭔가 주고 받는 행위에요. 심지어 갓난 아이도 엄마 젖을 먹고, 쌩긋 웃어주는 것으로 엄마에게 기쁨을 주잖아요. 그래서 더 잘 키우도록 엄마의 마음을 자극하잖아요. 이건 내가 신입사원들에게 아주 강조하는 겁니다."그는 이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구분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에게 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은 극구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인 거죠. 누구든 주변에 줄 생각을 스스로 각인시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바라는 성공이 무엇이든 명예와 권력과 금전은 결코 다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다가지려 할 때 문제가 생기니까요.""일은 내게 있어 유일한 취미였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와서 살펴보니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국내 기업과 외자 기업을 모두 경험한 그의 눈에 비친 두 기업집단의 차이는 무엇일까."외자로 옮긴 뒤 제품력 하나 믿고 너무 일방통행하지 마라, 고객 무시하지 마라, 당신들이 잘났다고 생각말고 겸손하라고 떠들고 다녔죠. 그렇지만 국내 제약회사들이 가격기반의 마케팅을 하는데 비해 외자사들은 확실히 과학기반의 마케팅에 강점이 있더라구요. 물론 제품력 등 태생적 자산의 차이가 있다쳐도 이 점은 국내 제약회사도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 국내 제약산업 앞날도 생각해 줘야죠"1970년대 초반 과장 최현식.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범상치 않다. 제약산업 초창기, 그러니까 그 역시 젊은 시절 당시 이종근 제약협회장(작고)을 독대해 덤핑가격을 방지하도록 건의했고, 예상대로 좋은 결과도 이끌어 냈던 그는 앞으로 국내 제약산업을 걱정했다. "당시 가격 카르텔을 형성한 거니까, 제약업계 담합의 원조겠지. 공소시효 끝났으니 안 잡혀 갑니다. 당시엔 회사들이 스스로 기반을 깎아 먹었다면 이젠 시장을 축소하려는, 그래서 건보재정을 줄이려는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제약산업이 위기를 맞았거든요.제네릭이 국내 제약산업에 큰 보탬이 됐지만 이젠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제네릭 회사를 합병해서 뛰어들고 있잖아요. 혁신신약이 고갈되니까 말이죠. 앞으로는 제네릭도 쥐어짜는 시대가 도래할 거에요. 하지만 정부도 건강보험 재정의 중요성 못지 않게 산업의 앞날도 함께 고려했으면 합니다.""군인 아버지의 피를 받았다"고 철저히 믿고있는 그는 ROTC를 통해 군생활을 했고, 지금도 한국전쟁에서 순직한 아버지의 공로로 받은 국가유공자 자격증을 지갑에 소중하게 넣고 다닌다. 그는 친가외가 모두 만석꾼으로 불렸지만 수업료 면제를 바라보고 국립 서울대에 진학했고, 공대를 가려했으나 고등학교(경복고) 담임선생님이 '합격률 높이자'며 약대를 보냈으며, 기갑장교를 하려했으나 보병 직분을 받았고, 제대해 먹고 살일을 찾다보니 대한중외제약에 몸담게 됐다.우연처럼, 필연처럼 그의 인생은 제 갈길을 잡아 평사원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외자 기업의 코치(고문)로 45년을 수놓았다. "한국엔 아내와 저 밖에 없어요. 한달 정도 자식들과 친척들이 있는 미국에서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요." 아직도 80대 중반을 치는 그의 골프실력을 보면 생물학적 나이에 0.7을 곱해야 실제 나이라는 그의 말이 허언만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40대 후반' 그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2011-04-13 06:50:00조광연 -
"실의에 빠진 제약업계에 희망의 멜로디를""남아공월드컵 당시 지역 주민과 함께한 응원전이 떠오르네요. 당시 저희 밴드의 경쾌한 응원가를 통해 지역주민과 안국약품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 뿌듯합니다."월드컵 응원전 공연 이후 지역 주민들의 알은척에 어깨가 들썩여 진다는 안국약품 구철회(수도권종병사업부 3지점) 대리. 구 대리는 회사측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안국약품 밴드부 '안국싸우전빌' 보컬이다."밴드부는 지난해 초 평소 개인적인 취미생활로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영업본부 정준호 전무님 권유를 계기로 결성됐습니다. 처음에는 뜻있는 직원들이 모여 보컬 1명과 악기 담당 3명으로 단촐하게 시작됐죠."보통 밴드부는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 경험이 있거나 동호회 활동 경력자들로 채워지지만 안국싸우전빌 상황은 달랐다. 평소 음악에 관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고 더욱이 고가의 악기와 연습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하지만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과 새로운 도전을 꿈꾸던 이들의 열정으로 결국 밴드부를 결성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음악이라는 유를 창조하기 위해 경험이 무한 구성원들이 음악에 대한 도전정신과 열정하나로 모인 셈이었다."처음에는 많이 어설펐습니다. 무엇보다 기초적인 실력들에 연습량마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죠. 음향시설 등 부족했던 장비도 걸림돌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첫 공연에서는 다소 균형감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다소 어색했던 첫 공연. 자칫 안국싸우전빌을 와해 위기로 몰아넣을 암초가 될 뻔했단다.하지만 열정하나로 똘똘 뭉친 안국싸우전빌은 어느덧 안국약품 동호회 대표 브랜드가됐다고 한다. 그 계기는 시장형 실거래가, 쌍벌제 등으로 실의에 빠진 동료들에게 힘이되고자 했던 도전의지였다고. 물론 여성 보컬영입과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남아공월드컵은 이런 의지를 한층 높여줬다."실력파 여성 보컬이 무대에 오르자 반응이 확실히 다르더군요. 반응이 좋으니 자연스레 힘이 솟더라구요. 이런 가운데 월드컵이 열렸고 저희 회사에서도 응원에 나섰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응원자리를 만들었지만 이런 상황이 생소했던 주민들은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웅장한 전자 사운드가 온동네를 떠들썩하게 울리면서 어느새 삼삼오오 몰려든 지역주민들로 채워졌고 분위기도 한껏 고조됐습니다. 경쾌한 싸우전빌 응원가로 지역주민과 안국약품 임직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잊지 못할 거리응원전. 이후 안국싸우전빌에 대한 위상과 대우가 달라졌다. 특히 안국약품이 직원 상호간 교류, 애사심 고취를 위해 동호회에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펴면서 안국싸우전빌도 조만간 자체 연습실이 생긴다고."올해에는 사내에 연습실이 생깁니다. 앞으로 좋은 공연, 무엇보다 안국싸운전빌은 변화의 전환점에 있는 제약업계의 현실에서 힘차게 도전하는 안국약품 직원들을 위해 희망의 멜로디를 선사할 계획입니다.""마지막으로 저희 직원들에게 마음속에 품었던 꿈을 꾸게 해주시고 희망을 선사해주신 사장님과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임직원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2011-04-11 06:42:00이상훈 -
"심평원에서 불사른 30년 공직인생"국내 건강보험 약제관리 체계를 수립한 산증인을 찾는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김보연(약사, 55) 업무상임이사는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의약품 급여기준에 대한 젊은 시절의 애정어린 관심과 흥미는 30년간 김 이사의 발을 심평원에 묶어뒀다."학교다닐 때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건강보험에서 의약품이 차지하는 위치와 중요성이 높아진 최근의 상황을 볼때마다 새록새록 보람을 느낍니다."의약품 분야 뿐 아니다. 해외에서도 부러움을 사는 청구와 심사 전산화는 김 이사가 TFT 팀장을 맡아 이뤄낸 성과였다.각종 명세서 코드를 표준화하고 심사기준을 전산화하는 것은 당시에는 획기적인 일이었다.하지만 요양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적지 않은 땀도 필요했다."2년반 동안 12시 이전에 거의 집에 들어 간 적이 없었어요. 정부가 용단을 내렸고, 의료계도 협조해준 덕에 지금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죠."전산화 작업의 성과는 남달랐다. 우선 진료비 지급기일이 30일에서 14일로 대폭 단축됐다. 국가적으로는 질병통계자료를 생성하는 중요한 데이터의 보고를 갖게 됐다. 심사직 직원들의 과부하를 조금이나마 덜어준 것은 부대효과다.지금은 심평원의 양대 축 중 하나가 된 평가체계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김 이사가 심평원 설립지원반에서 근무하면서 이뤄낸 성과였다.또 약국 처방전 전산화를 위해 그가 주축이 돼 개발했던 DUR시스템은 금기약물 처방조제를 걸러내고 의약품 중복사용을 이중점검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하지만 김 이사의 최대 수훈이자 '전공'(전공)은 단연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마련하면서 의약품 급여체계를 포지티브시스템으로 전환하고 각종 관리장치를 마련한 데 있다."당시 외국 사례를 분석했는데, 한 가지 제도에 집중하기보다는 다각적인 방법을 다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완해야 할 점은 많지만 제도를 운영하면서 슬기롭게 의견을 조율해 나가면 해법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풍파가 없지는 않았다. 의료보험연합회 시절 입사초기만 해도 심평원의 위상은 미미한 수준이었다."동창 모임에 나가서 연합회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보험회사에 다니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왜 그런 데서 일하냐는 반문만 돌아왔던 시절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그도 그럴 것이 김 이사의 30년 세월 동안 심평원은 직장과 지역 의료보험 심사업무을 맡아하던 조합에서 건강보험 심사.평가, 정부 정책지원 등 중책을 담당하는 공기업으로 명실상부 자리 잡았다.200명 남짓하던 직원들도 1600여명 규모로 8배 이상 늘었다.2007년 보건산업진흥원에 9개월간 파견 나갔던 시절은 김 이사에게는 또다른 전기가 됐다."스스로 성적표를 작성하다보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약제비 적정화 방안, 한미 FTA를 겪으면서 지치기도 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동안 전력 질주만 해왔구나, 직원들에게도 일이 최우선이라고 강요만 하지 않았나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구요. 한번쯤은 다른 위치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구나, 진흥원 파견이 준 선물이었죠."선물의 힘이었을까. 공직약사 외길, 후회없이 보람만 크다는 김 이사의 후배들에 대한 애정어린 충고는 "목표가 변하지 않았다면 크게 보고 계속 가라"다."저도 두번 정도 그만둘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어요. 직능을 불문하고 처음 들어왔을 때 목표가 있었을 거잖아요. 그 목표가 바뀌지 않았다면 힘들어도 계속 가는 게 나쁘지 않습니다. 국민을 위한 일인데 약간 손해보더라도 후회는 없을 겁니다."과장과 차장급 중간관리자에 대해서 남다른 충고의 말도 전했다."몇년 있으면 선배들이 대거 빠져 나갈 겁니다. 과장과 차창급 직원들이 심평원의 중추이자 앞으로 이끌어가 기둥이에요. 빨리 선배들로부터 업무를 배워 스스로를 무장하기 바랍니다."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대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소신도 밝혔다."보건의료에 몸 담은 모든 분들이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2002년 때처럼 다시 한번 슬기를 모을 때죠. 그 어느때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2011-04-07 06:40:20최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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